리뷰/영화

노무현입니다

자카르타 2017. 5. 28. 21:04



- 어땠어? 

- 신파네. 

- 뭐야 눈이 벌겋게 운 사람이. 

- 슬픈 건 슬픈 거고. 신파인 건 신파인 거지. 

- 뭐가 그렇게 신파스러운데? 

- 신파가 별건가? 관객보다 먼저 우는 게 신파지. 인터뷰이들은 죄다 시작하기도 전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 누가 먼저 우느냐로 따지면 이 영환 신파가 아니지. 관객이 먼저 울고 있었을걸. 극장에 들어갔을 때부터.  

- 흠… 그렇긴 하네. 

- 노무현이란 이름이 그렇지 뭐. 영상 속에서 유시민이랑 다른 누군가 그랬듯이 마음이 짠한. 

- 맞아. 난 그게 아쉬웠어. 그냥 그 이름이 주는 슬픔의 정조에 머물러 있어서. 장례식 장에서 술잔을 기울이면서 고인을 회상하는 느낌이랄까. 

- 그거야 우리가 그를 제대로 애도할 기회가 없었으니까. 이제 마음껏 애도할 시기가 온 거지. 

- 그 애도에서 좀 더 나아갈 수는 없었을까? 

- 어떤 쪽으로? 

- 나는 한 인간을 선명하게 그리기 위해선 그의 한계와 충돌지점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 노무현이란 사람은 누구와 어떤 세력과 부딪혔던 걸까? 그런 걸 더 다뤄야하지 않았을까 하는 거지. 

- 여기도 다양하게 나오잖아. 상고 졸업생 노무현을 조롱한 사람들. 걸핏하면 빨갱이 타령하는 사람들. 그 정점에 이인제가 있는 거로 그리고 있지. 

- 난 그게 불편했어. 

- 불편해? 

- 응 미안함일 수도 있고, 일종의 죄책감일 수 있는데. 노무현을 그렇게 떠민 것은 이인제가 아니거든. 

- 그럼 누구야? 

- 나 같은 사람들이지. 

- 그건 무슨 얘기야? 

- 나처럼 노무현을 지지했다가 등을 돌렸던 사람들 말이야. 그게 노무현에게 가장 큰 좌절감을 주지 않았을까? 그때 우리는 왜 노무현과 불화했을까? 이제 그 불화의 원인을 꼼꼼히 따져볼 때가 되지 않았나? 그게 요즘 내 화두이기도 하거든. 

- 그럴까? 나도 노무현의 당선에 환호했다가 탄핵당한 그를 지키기 위해서 촛불도 들었지만 결국 노무현의 정책들에 실망하고 같은 거리에서 반대를 외쳤지. 하지만 다 타당한 이유가 있었잖아. 노무현도 현실 정치 속에서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거였고. 이 영화에도 나오잖아. 인권위가 파병에 반대하니까 노무현은 오히려 그게 인권위의 할 일이라고 했다고. 

- 맞아. 그게 그의 매력이지. FTA에 반대할 때도 반대하는 국민들이 있어서 고맙다고 했다잖아. 

- 그래 노무현도 국민들을 이해하고 있었던 거지. 딱히 불화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 그럼 우리는 노무현과 화해를 한 것일까? 

- 화해? 

- 다시 얘기하면 유시민이 얘기한 ‘노무현의 시대’는 뭘까? 그 시대와 나는 불화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거지. 문재인이 연 새 시대와 화해하기 위한 노력들은 여기저기서 보여. 어떤 이들은 다시는 노무현처럼 보내지 않겠다며 다짐을 하고, 김규항 같은 이는 이 정부를 보수 정부로 규정하면서 진보의 시선으로 과도하게 재단하지 말아야한다고 하잖아. 또 어떤 이는 노무현이 부딪힌 현실 외교, 현실 정치를 얘기하고 있고. 그때로부터 10여 년 나이를 먹은 우리는 이제 그런 현실의 파도를 타는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걸까? 그게 ‘노무현의 시대’와 노무현과 화해하는 방법일까? 

- 그게 노무현이 원했던 길일까? 

- 그게 노무현이 원했던 길이 아니라 생각하기에 더 혼란스러운 거야. 마치 청개구리 엄마의 유언을 받아든 청개구리 같은 심정이랄까. 

- 현실주의자라. 우리 나이에 현실주의자도 나쁘진 않지. 

- 그럴까? 

- 누가 그랬다던가. 현실주의자와 기회주의자의 차이는 비전에 있대. 확고한 비전이 있고,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현실을 이용해가는 사람은 현실주의자이고, 비전도 없이 그저 일신의 영달만을 위해서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은 기회주의자라고. 그런 기준에 의하면 노무현은 확실한 비전이 있던 사람이잖아. 그때 그와 불화했던 우리도 비전이 있었고. 

- 비전이라… 그래 있었지. 

- 지금은? 

- 글쎄… 너는? 

- 글쎄… 완전히 사라진 것 같지는 않지. 

- 그렇지. 얘기하다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 어떻게? 

- 이제는 노무현 이야기를 그만 만들었으면 했어. 이런 식으로 만들 거라면, 이라는 단서가 붙지만, 대부분 이런 신파로 만들 것만 같았거든. 하지만 이제 애도의 시작이라면 이래도 좋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다 보면 우리나 노무현의 비전을 다루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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