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콜러
더 콜러
The Caller
6.2
글쓴이 평점
시간 여행은 그 기술의 실현 가능 여부와는 별개로 일종의 윤리 문제를 아우라처럼 두르고 있다. 이를 테면 스티븐 호킹 박사가 인과율 때문에 자연 스스로 시간여행을 방해할 것이라고 한 얘기는(실은 엄밀히 말하면 시간 여행을 반대한다고 한 것은 아니고, 과거에 실력을 행사해 미래가 달라지는 일은 자연 스스로가 막을 것이라고 했다), 달리보면 인과율로 발생하는 시간여행의 난제를 마치 자연 스스로 윤리 문제처럼 받아들이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자연에 딜레마를 피해가려는 어떤 협의체가 있을리 만무하다는, 이러한 상식에 근거해 허구의 세계는 마음껏 시간 여행에 대한 상상을 펼친다.
과거의 행위는 미래의 결과로 나타난다. 이는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아서 불변의 인과율을 만든다. 어찌 보면 대부분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는 그 인과율을 극복하려는, 다시말하면 미래의 행위로 과거를 바꾸려는 의지에 대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이 영화 <더 콜러>도 그런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우연히 과거의 광인과 통화를 하게된다. 과거에 속한 광인의 폭력에 따라 현재의 주인공은 힘없이 이웃과 친구를 잃고 '상실한' 현재를 살 수 밖에 없다. 그러던 중 무력하게 당하기만 하던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에 이어 자기 자신의 생명이 위험에 빠지자 과거에 영향을 줄 방법을 모색한다. 미래의 행동이 어떻게 과거 - 벌써 결정이 난 과거를 바꿀 수 있을까? 그가 택하는 방법은 과거에 속한 개인의 의지에 호소하는 것이다. 광인을 설득해 사고 현장으로 가도록 하거나, 과거의 어린 자신에게 적대자에 대항하도록 부추기는 식이다.
영화의 상당부분이 과거의 폭력의 결과가 현재를 어떻게 왜곡하는지에 대해, 그 공포를 묘사하는데에 할애된다. 이 부분의 연출은 꽤 적절한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뒷부분에서 사건의 갈등을 해결하는 지점에 이르면 그다지 큰 감동을 주지 못한다. 왜일까? 내 생각에 모든 서사가 종결된 지점에서 주인공에게 남겨진 상처들이 전혀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최악의 상황만 넘겼을 뿐이지 그가 겪은 모든 상처들이 전혀 원상복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사를 끝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마지막에 (과거와의 소통이라는 소재와는 전혀 별개로 이어지던) 폭력 남편에 대한 문제가 나름 캐릭터 안에서 근거를 가지고 해결되지만 그 해결이 주인공의 '타락' 혹은 '변신', '변질'에 의한 것이라고 봤을 때 이 역시 주인공에게 정당하지 않은 결말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그리스 비극과 같이 무고하지만 흠 있는 자의 타락과 고난을 그린 것일까?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공포들이 그러한 부당한 피해를 제대로 만회하지 못하고, 그저 주인공 하나의 목숨만 건진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끝나고 만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뭔가 매끈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현재의 결과를 뒤집는, 즉 인과율을 뒤집는 가능성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스스로 연 가능성을 한껏 열어젖히지 못한 한계. 그 한계에서 석연치 않은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그런면에서 보면 <나비효과>는 자신의 설정을 끝까지 관철한 훌륭한 사례일 것이다.
끝으로 그런 의문이 남는다. 우리가 과거를 바꿀 수가 있다면 그 과거는 우리의 미래가 아닐까? 아직 알 수 없는 오지 않은 모습일 테니. 그렇다면 시간여행이 가능해진 시대의 시간은 얼마든지 나선형으로 쳇바퀴 돌듯 진화해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답도 없는 상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