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의 지겨움
밥벌이의 지겨움
연대기는 분명하지 않다. 김훈의 글을 먼저 알게되었는지, 기자 김훈을 먼저 알게되었는지. 아마 글이 먼저이지 싶다. 그의 글이 마냥 부러웠을 때 그가 보수인지 진보인지가 궁금했다. 그가 전두환 정권에서 곡필을 했다는 얘기도 있었고 그런가하면 '한겨레' 신문사 기자로 들어갔다는 소식도 있었다. 그래서 칼의 노래인가, 어디 서문이 곱게 읽힐리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그런 버릇 - 누군가 돌출하는 사람을 보면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습관은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 내 스스로도 내가 어느 쪽인지 모호하다. 모호하지만 어렴풋이 진영 논리라고 하는 그 거친 편가르기에서는 대안이 없다고, 어디에 서 있는가보다는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문제는 내가 그에 상응하는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일뿐.
이런 나름 복잡하고도 모호한 - 복잡하다는 것은 사실 모호하다는 말이다. - 욕망으로 읽은 이 책이 그 어떤 효용을 가졌더냐고? 쉽게 만족하거나 하지 않은지 오래임을 감안하고 말하자면 '솔찮다.'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나름 당대를 헤쳐나가는 전략이라는 데에 동의하고, 진영으로서는 한 진영을 선이다 그 반대를 악이다 규정하는 시선으로는 아무해답도 얻지 못한다는 결론에도 공감했다. 물론 그 결론은 역시 김훈이 당대를 살아나가는 전략일 것이다. 또 밥은 보편적이면서도 개별적이라는 말에 밑줄을 그었다. 비단 밥뿐이랴. 세상의 많은 일들이 보편적이면서 개별적이고 개별적이어야 하는 순간에 보편의 시선을 버리지 못해서, 혹은 보변의 잣대로 봐야하는 순간에 개별에 매몰되기에 생기는 문제들일 것이다.
이러저러한 독백 수다를 엿듣는 맛이 있었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문장이다. 세상을 그의 몸, 그의 감각으로 번역해 낸, 아니 소화시켜 배설해낸 그 굵고 짧은 문장들이 좋았다. 탐나는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