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책

군주론

자카르타 2012. 12. 1. 11:56


군주론(제3판 개역본)

저자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출판사
까치 | 2012-01-0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군주론 이탈리아 원전 번역판 출간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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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한비자에 종종 비교되곤 하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었다. 

시대는 1400년대 후반,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의 일이다. 한비자가 거의 2300여년 전의 일이니까 한비자와 군주론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한비자가 황제와 군신의 관계에 대해서 주로 논한다면, 마키아벨리는 군주를 둘러싼 귀족, 군사, 시민, 외국 간의 역학을 두루 설명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1500년대 이미 이탈리아는 시민 권력이 어엿한 정치 주체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는 다른 무엇보다도 시민들과의 역학에 상당한 공을 들여 설명하고 있다. 

어찌 보면 군주론이 군주의 처세술에 그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 혐의를 짙게 만드는 것은 상황에 따른 대응을 나열하지만 그 기저에 흐르는 철학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덕성을 갖추기 보다는 그렇게 갖춘 것으로 '보여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이나, 그가 역설한 사자와 여우의 재능을 고루 갖춰야 한다는 주장을 보면 마키아벨리 자신이 참 영악한 인물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그를 높이 살 수 있는 것은 인간을 다양한 욕망의 주체로 설정하고 환원하는 철학과 이론으로는 정치의 천변만화에 대응할 수 없다는 솔직한 고백을, 그가 줄곧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시 당시 다양한 욕망의 주체들이 그 욕망을 실현할 수 있을 정도로 정치세력화 한 탓이겠지만) 그 후로도 많은 정치 담론들이 도덕과 윤리의 당위나 특별한 세계관의 현현으로 정리 이론을 전개하는 것에 비하면 마키아벨리는 정치 현실에 뿌리내린 실천파일을 제시하고 있다.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만큼 이 책은 인간 세상의 현상에 대한 냉정한 관찰의 기록들이 풍성하다.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늦출수록 화근만 키울 뿐이니 빨리 제거해야 한다는 등, 어쩔 수 없이 저지르는 살생은 곧 덕이라는 주장 등은 살벌한 정글에서 살아나온 사냥꾼만이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닌가 싶다. 

사마천도 그렇고 한비자도 그렇고 마키아벨리도 그렇고. 뿐인가? 공자도 그렇고 자신의 철학을 현실 정치에 구현하려고 했던 인물들이 치욕 속에서 이런 노작들을 만들어 낸 것을 보면 일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과연 그들의 노작들은 현실 정치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했을까? 아니면 그들의 얘기 역시 하나의 담론으로 숨도 제대로 쉬어보지 못하고 화석화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커다란 물음표를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