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선기 배시황전 옥소기연
동선기 배시황전 옥소기연(한국고전문학100 1)
나는 이 책을 언제 샀을까? 군대가기 전에 도서관에서 매주 책들을 대출하면서 대출 카드의 목록이 늘어나는 재미에 빠졌던 적이 있다. 한번에 다섯권을 빌릴 수 있었는데, 방학때도 거르지 않고 그랬던 이유는 그때 누군가, 대학생 때 책 200권은 읽고 졸업해야 한다는 말에 더 자극 받은 것도 있었고, 또 고등학생 때는 상상도 못할 어마어마한 장서들을 보고 호사를 맘껏 누려보고자 하는 욕심도 있었을 게다. 그 책을 다 읽었냐고? 물론 아니다.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책들도 있었고, 또 시간에 쫓겨서 그냥 표지만 보고 반납한 책이 거의 9할은 됐을 성 싶다.
그렇게 얼마를 지내고 나서 남은 건 책욕심 뿐이었나? 그 욕심은 전집류 모으기로 이어졌다. 이 책도 그런 욕심의 발로로 산 책이지 싶다. '우리 고전 문학'을 관통하는 경험이라도 해보고 싶었을까? 한국고전문학100선의 1권부터 시작하겠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샀을 게다.
그렇게 거의 20년이 넘게 이 책은 그냥 내방 책꽂이를 장식하고만 있었다. 제대로 손을 타지도 않았는데 벌써 책등과 앞뒷면의 색깔이 달라질 정도로 바랬다.
이 책을 다시 읽게 된건, 이 책 말고도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한테 너무 미안하던 차에 가능한 읽지 않고 오래 묵은 책들을 일별하려는 것도 있고, 지금 쓰는 글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다보니 무엇보다 옛날 문화, 언어, 사고방식에 젖어들고 싶다는 욕구도 있었다.
이 책을 읽은 느낌은...? 글쎄. 우선 의문이 들었다. 우리 고전을 고전이게 하는 것은 뭘까? 그저 세월의 풍상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책들은 모두 고전으로 쳐주는 건 아닐까? 아니면 그 풍상을 견뎌냈다는 것에는 사람들에게 많이 회자되었음을 전제로하는 관점이 개입된 것일까? 그 밖에 다른, 비전문가가 모르는 이유들이 또 있는지 모르겠다.
동선기는 구운몽처럼 잘난 선비가 중국 삼대 명승지를 돌아다니면서 각 처의 절세가인과 부부의 연을 맺는다는 내용이다. 그중 단연 빼어나나 재색을 자랑하는 것은 동선이다. 동선은 남편을 입신양명시키려는 생각에 남편을 전장에 책사로 추천하고 그에 걸맞게 공을 세운다. 그러나 모략에 빠지고 ... 이후부터는 춘향전과도 또 비슷하다. 결국 동선의 헌신으로 남편은 영화를 되찾고 본부인을 비롯해서 세 명의 첩과 또 복권되었을 때 새로얻은 유력자의 딸까지 모두 다섯 명의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내용이다.
배시황전은 나선정벌 때 배시황이란 장수의 전쟁에 대한 짧은 기록이다. 생각지도 않게 당시 전술이라든가, 무기에 대해서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옥소기연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기연소설이다. 운명의 굴레를 몇 바퀴 구르다가 결국 만날 사람들은 다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다. 심청전과 같다고나 할까? 심청전보다 재미가 덜한 것은 이 안에는 인과응보나 희생의 요소가 거의 없다. 맨 나중에 이들이 뿔뿔히 흩어지게 만든 해적이 참수되는 이야기는 있으나 권선징악이라고 할만한 요소는 아니다.
세가지 옛 이야기들은, 글쎄 내 눈에는 그리 재밌거나 감동이 없다. 물론 이 책이 아직 품고 있는 고어들이 적잖이 몰입을 방해한 탓이기도 하지만 동선기나 옥소기연 같은 이야기들이 어찌 서사의 중요한 레퍼토리가 될 수 있었는지가 참 의아할 뿐이다. 이런 것의 주요 소비층은 누구였을까? 의심스럽기도 하다. 과연 이런 것이 민중들에게 크게 이야깃거리로 받아들여졌을까? 오히려 다른 민담이나 설화들이 더 민중들을 사로잡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아니 앞으로도 꾸준하게 이 시리즈를 모아볼 작정이다. 어디 우리 고전이라하는 글들은 어떤 수준인지 엿보는 것도 가치있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