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과학인 우리공예 1
겨레과학인 우리공예(겨레과학총서 1)
과학은 곧 문화다.
서양 계몽주의 이후 발전한 '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과학사는 빈약해 보일 수 밖에 없다. 풍우란은 중국인(동양인)의 정신세계를 분석하며 과학이 없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논증하기도 했는데 이 책의 저자 정동찬은 우리 전통 공예이 곧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전체 3권으로 이뤄진 책 중 1권에서는 한지와 나전칠기, 옹기, 유기 등 16가지의 우리 공예를 소개하며 그 안에 어떤 겨레과학, 겨레슬기가 감추어져 있는지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철광원석에 포함된 황 성분을 제거(탈황)하기 위해 생석회(산화칼슘)을 쓰거나 가죽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닭똥물을 쓰고, 한지의 섬유질이 엇갈려 고착되도록 물질을 앞뒤좌우 번갈아 가면서 한다는 얘기를 보면,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마땅한 분석의 도구도 이론도 없을 당시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발견과 발명을 이어나갔을 것을 생각하면 그 하나하나가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겨레 슬기가 현대의 과학을 꽤 완벽하게 대체하고 있기 때문에 대단해 보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연과의 융화의 자세, 삶의 자세에서도 감동을 주는 것들이 많다. 고운 쪽빛을 얻기 위해서 특정한 시기 안개가 자욱한 새벽에 나가서 쪽을 채취한다던가, 변형이 되지 않는 대패틀을 만들기 위해 1년 동안 연못에 나무를 가라앉혀 놓는다던가 하는 것을 보면 인스턴트 문화, 쥐의 호흡을 가지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이 얼마나 부박하고 경박해보이는지 모른다.
좋은 자료가 많아서 앞으로 종종 들춰보게 될 듯 하다. 하지만 좋은 내용에 비해 편집이나 사진의 처리 등은 정말 아쉬울 뿐이다. 대부분의 사진들이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을만큼 어둡고 작게 처리되어 있었다. 오히려 이 책을 원작으로 삼고 있는 아동용 책 <우리 겨레 과학 여행>이나 아동용 전집이 훨씬 그림을 이해하기 쉽게 처리해 놓은 정도다. 책의 가치와 필요에 맞게 사진도 재편집해서 재출간한다면 정말 좋겠다.
4.
우리 동양의 과학개념을 찾아 낸다면 그것은 곧 격물치지요, 궁리일 것이다.
과학기술도 문화로 인식하여야 한다.
45.
고려때 관제 가운데 장흥고 라는 것이 있으며, 조선시대까지 이어진다. 이 장흥고는 돗자리와 유둔지 등을 맡아보는 관공서로, 유둔지는 군인들이 싸움터에서 천막치는 재료가 되었다.
55.
이렇게 앞물질과 옆물질을 한 까닭에 섬유조직의 배열이 위아래, 옆으로 얼기설기되어 종이의 강도를 높인다.
129.
울죽의 가장자리에서 자라는 대나무는 전죽으로 적당하다.
130.
보통 몸, 활과 화살을 삼합이라 하는데 이것이 맞지 않을 경우 올바른 궁도를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강한 활도 가벼운 화살을 쏠 때는 뒷부분(오늬깃 부위)이 꼬리치며(흔들거리며) 잘 날아가지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가벼운 활로 무거운 화살을 쏠 경우 목표물까지 화살이 날아가지 못하게 된다.
이상과 같은 조건을 갖춘 해장죽(시누대)을 12월~1월 사이에 서리를 많이 맞은 것으로 구하는데 서리를 맞으면 물이 내려 대나무의 껍질이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148.
기왓가루로 광을 내면 주물유기가 완성된다.
160.
즉 쇠를 녹이는데 우리 선조들은 조가비와 숯을 쓴 것이다. 조가비는 요즈음 생석회를 대신한 것으로 쇠를 가장 잘 부식시키는 황을 제거하는데 가장 좋은 효과를 낸다.
165.
쇠붙이를 생산하던 일정한 지역인 철소에는 자기소, 금소, 은소와 마찬가지로 소를 통괄하는 우두머리인 소리와 높은 수준의 기능보유자로 직접 생산 노동에 종사하는 소민이 있었다.
168.
이렇게 만들어진 낫을 빨갛게 가열하여 황혼빛에 오는 순간 차가운 물방울을 날부위에 굴려 부분 열처리를 한다.
171.
이러한 이유로 대장장이들은 낫을 만들 때 부분열처리를 하여 낫에 걸리는 힘의 일부를 낫의 뒷부분이 흡수하게 하는 역학적인 과학 슬기를 갖고 있다.
183.
이러한 금속 가공기술과 열처리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쓰다 닳은 도구들에 다른 쇠를 붙여 버려서 재활용할 수 있었고.
199.
장도를 사용할 때 강하고 잘 부러지지 않아야 하므로 주로 뒤의 방법으로 장도를 만든다. 모양이 잡힌 칼날을 많은 양의 짚 속에 깊숙히 넣어서 부엌 아궁이 등에 넣어 불을 지핀다. 이 작업은 쇠의 강도를 완화시키는 작업으로 만약 불에 달군 칼날의 쇠가 공기와 접촉하게 되면 쇠가 다시 강하게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10시간 동안 잿속에서 식힌 칼몸을 꺼내어 다듬게 되는데 이 과정을 마치고 나면 철이 무르게 되어 줄로 다듬어 칼몸을 갖추고자 할 때 또는 명문을 새겨 넣거나 상감할 때 편리하다. 칼몸의 형태를 완전히 갖춘 다음 거친 숫돌과 부드러운 숫돌에 날을 세운다.
200.
칼몸의 면적 ¼ 가량의 날 부위에 된장을 바른 다음 숯 화덕에 넣고 약 800~900도씨로 열을 가한 뒤 집게로 꺼내어 황토3:물7의 비율로 섞은 황토물에 전체 부위의 2/3가량을 담근다. 열을 가하되 온도가 너무 낮을 경우 강도가 약하여 무르며 온도가 높은 경우 칼날에 금이 가고 잘 부러지기 쉬운 반면 황토물이 뻑뻑하여 얇은 칼날이긴 하지만 휘어지는 일은 없다고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특이한 사항은 칼날이 화덕에서 달구어진 뒤 황토물까지 움직이는 시간은 고도의 기술로 칼날의 붉은 색을 보며 느낌에 의한 순간 동작으로 처리해야 한다.
담금질이 잘 된 칼날은 된장을 바른 날부분은 강, 황토물에 들어간 ⅔ 가량은 중강, 가장 윗 부분 즉 황토물에 들어가지 않은 부분은 약하게 되어 소위 단단함과 부드러움을 고루 갖춘 훌륭한 칼몸이 된다.
228.
표준화는 대량생산이나 작업능률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일 뿐이지 그것이 곧 과학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고유의 겨레과학을 보는 시각에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259.
가죽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가능하면 날가죽을 얻는 즉시 가공해야 한다. 간혹 날가죽의 부패를 막기 위하여 응급으로 소금을 뿌려 놓는 이른바 염피가 있는데 이는 북가죽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그 이유는 소금을 머금은 가죽으로 만든 북은 흐린 날이면 소리가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260.
가죽은 부풀어 있고 몹시 뻣뻣한 상태가 되어 있으므로 이를 닭똥물에 이틀가량 담가두어 가죽이 원상태로 부드럽게 한다. 이것은 오늘날의 염기성 황산크롬 용액을 사용하는 피혁처리법에 해당하는데 예전에는 닭똥에서 그와 유사한 약효를 얻었던 것이다.
273.
대팻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참나무 등을 연못가장자리의 뻘속이나 연못 밑바닥에 1년쯤 묻어두었다가 꺼내어 쓰는데 그 까닭은 묻어두는 동안 나무는 잘 썩지 않으면서 기름기가 모두 빠져서 나중에 트집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288.
탕개목. 탕개줄
289.
톱을 보관할 때는 탕개줄을 느슨하게 풀어 톱양과 톱자루의 휨을 방지한다.
322.
조개가루만들기
먼저 조가비를 항아리에 담아 옹기가마 등에 넣고 1200도씨의 높은 온도에서 5일정도 굽는다. 구워진 조가비를 가마에서 꺼낸 뒤 멍석을 펴고 쏟아 고루 펴고 그 위에 물을 살짝 뿌린 뒤 항아리에 다시 담고 뚜껑을 덮는다. 이 상태로 20분 정도 지나면 높은 열과 함께 김이 새어 나오면서 조개가루가 만들어진다.
336.
숯만들기
절대 썩은 나무가 섞여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썩은 나무는 주변의 나무를 완전히 태워서 숯의 생산율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347.
부레풀.
말린 부레를 3~4개 정도 곱돌 도가니에 넣고 물을 약 7~8배 부은 뒤 숯불에 올려놓고 끓인다. 부레를 30분 이상 끓이면 끈끈한 점액이 스며 나온다. 이때 10분간 끓이는 것을 멈추었다가 다시 30분 정도 끓이고 나서 다시 10분 정도 쉬고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한다. 어느 정도 점액이 빠져 나와 부레의 조직이 흐트러지면 저어가며 끓여 풀로 사용한다.
349.
부레풀을 바른 작품을 습한 곳에 두면 풀려서 떨어지기도 하는데 이때는 불에 달구어진 인두로 그 위를 살며시 눌러 주면 다시 감쪽같이 붙는 잇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