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책

조화로운 삶

자카르타 2013. 4. 14. 21:13



조화로운 삶

저자
헬렌 니어링 지음
출판사
보리 | 2000-04-1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은, 미국이 일차 대전을 치르고 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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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대한 욕망과 욕망하는 부에 걸맞는 마음의 태도 사이에 균형이 없이 무조건 돈을 많이 벌려고 하지는 않나? 

오늘 설교 때 비슷한 말씀이 있어서 든 생각이다. 마치 잔을 준비하지 않고 수도꼭지를 트는 것처럼 삶의 양식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물질을 쫓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생각으로야 돈을 많이 벌면 어찌 어찌 좋은 일에 쓰겠다, 라고는 하지만 지금 소득에 걸맞는 나눔과 참여를 실천하고 있는가, 생각해보면 오히려 지금 구할 것은 돈이 아니라 지금 수입에 걸맞는 나눔의 훈련인 것 같다. 


스콧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은 우리에게 물질은 얼마나 필요하고 또 그 외에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얼마나 진지한가 하면 그가 50년이란 세월을 바쳐 이 질문에 스스로 답을 구할 정도로. 스콧 니어링의 자서전은 오래전에 읽은 적이 있다. 지금은 기억이 가물하지만 대도시의 교수로서의 삶을 훌훌 내팽개치고 중년의 나이에 시골에 내려가 스스로 땅을 일구며, 집을 짓고, 마치 수도사와 같은 생활로 자본주의의 대안을 모색했다는 정도. 그리고 100살이 되자 스스로 곡기를 끊으며 죽었다는 거. 한가지 크게 부러웠던 것은 뜻이 맞는 20년 연하의 아내를 만나 남은 여생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 정도다. 


<조화로운 삶>은 그가 구도자의 삶을 보낸 초기 20년 버몬트에서의 삶을 다루고 있다. 도시에서 처음 내려간 곳이라 당연히 시행착오도 많고, 그를 흥분케 한 발견들, 그가 책에서는 배우지 못한 깨달음으로 채워져 있다. 버몬트에서 니어링 부부는 철저하게 자급자족하고 채식을 하는 생활에 돌입한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버몬트 지역이 스키장이 들어서고 관광객이 몰려와 다른 주로 이사를 할 때까지 이들 부부는 일년에 4개월 정도를 제외하고는 줄곧 서리가 내리는 척박한 땅에서 일년 먹을 양식을 생산해내고, 자신들과 끊임없이 밀려오는 손님들을 먹이고 재울 기반을 마련하고 개인주의가 뿌리깊은 미국에서 마을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쉬지 않는다. 


책의 말미에 이들의 결산을 보면 20년의 시간 속에서도 어떤 것은 성공하고 어떤 것은 실패했음을 고백한다. 자급자족은 버몬트에 내려간지 얼마되지 않아 성공하지만, 마을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미국의 뿌리깊은 개인주의의 풍조아래서 끝내 성공하지 못한다. 딱 한번 미국 체신청이 니어링의 마을을 포함한 벽지에 대한 우편물 서비스를 중단하겠다고 했을 때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이에 대한 철회 운동을 전개하고 3주만에 성공한 사례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니어링의 운동이 여전히 회자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 뒤로 30년을 이어온 운동의 결산이 또 다른 양상을 띄고 있어서일 수도 있겠고, 그와 그의 아내의 삶이 구도자의 수련과도 같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벌써 60년이 훌쩍 지난 시기의 일들이지만 책의 말미에 나오는 이룬 것들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회고와 조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마을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신의 공명, 공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적정한 수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 

박원순 시장도 줄곧 강조하고 있지만 여기 저기서 마을 만들기에 대한 얘기들이 끊임없이 들리고 있다. 그리고 이 각박한, 한계에 다다른 도시와 자본주의 삶에 대한 대안을 요구하는 아우성이 나날이 높아만 간다. 이런 대안을 찾는 이들에게 60여년 전 먼저 실패를 맛본, 그럼에도 쉼 없이 그 길을 소명으로 생각하고 걸어간, 그러면서도 지치지 않고 너무나 아름답게 살아간 이 부부의 얘기가 더 없이 좋은 길동무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