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임꺽정. 1
임꺽정. 2
임꺽정. 3
임꺽정. 4
임꺽정. 5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을 읽는 중에 자세한 이미지를 얻고 싶어서 고우영의 만화 <임꺽정> 1~5권을 봤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하긴 10권짜리 소설을 만화 다섯권으로 옮겼다고 상상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일이긴 하다. 덕분에 임꺽정 서사에 대해서 다른 측면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는 했다.
고우영의 만화 <임꺽정>이 홍명희의 <임꺽정>과 가장 크게 다른 것은 인물이다. 홍명희의 임꺽정이 어떤 주의나 주장, 이념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은 데에 비해 고우영은 분명하게 '의적'을 그리고 있다. 탐관오리와 고리대금업자와 같은 수탈자들만을 대상으로 강도 행각을 벌이고, 거기서 거둬들인 재물들을 다시 가난한 자에게 돌려주는 것이나 임금의 종실인 단천령을 맞아들이는 장면에서도 홍명희의 작품과는 달리 신하의 예를 다하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 부하들이 탈주를 주장할 때 조선의 도둑이 명나라의 재상 부럽지 않다고 선언하는 장면들을 보면 소설에 비해 상당히 체제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마도 홍명희의 저작이 정부나 어떤 검열을 눈치보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쓰여진 것과는 달리 고우영의 <임꺽정>이 유신 체제하에서 연재가 된 것도 그 한 이유일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이 때로는 잔악한 일을 서슴지 않으면서 혐오감과 거리감을 주는 것에 반하여 친숙한 캐릭터 즉, 정의감으로 뭉친 캐릭터를 독자들에게 제시하려고 했던 것도 한 이유가 될 것 같다.
실은 홍명희의 임꺽정을 읽으면서 상당히 낯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건 고미숙 선생이 해석했듯이 다양한 인생과 행로에 대한 예찬일수 없었다. 임꺽정은 영웅이 되기에는 자신의 울분, 소욕을 좇아 행동하는 근시안이었고, 그의 여러가지 악행(?)에는 뚜렷한 근거나 일관성이 없었다. 오로지 하나 일관성이 있다면 '남자다움'이랄까? 이런 캐릭터를 보면서 도무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의문이었는데 오르한 파묵이 말했듯이 캐릭터의 전형이란 것은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것이며, 진정성을 가진 캐릭터라는 것은 주제를 드러낼 수 있는 상황을 캐릭터에게 부여하는 데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또 이 만화 <임꺽정>을 읽으면서 조금씩 이해가 가는 중이다.
유장하게 흘러가는 날 것 그대로의 인물을 보여주는 장편 서사와 뚜렷한 주제와 감흥을 설계하기 위해 다분히 전형성에 기대야 하는 소품의 차이랄까? 아무튼 소설 임꺽정을 마저 읽고 정리를 해 볼 문제다.
비교를 떠나서 만화 <임꺽정>은 꽤 재미있다. 붓선이 살아있는 (실제로 붓을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림채도 깔끔한 펜선이 강조되는 다른 만화와 달리 우리네 정감을 주고 있어 친숙하게 다가온다. 투박한 먹선은 특히나 임꺽정을 비롯한 산 사람들의 이미지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 이 작품이 40년이 지난 작품이어서 그렇겠지만 좀더 다양한 면분활을 쓰면서 표현에 좀 더 다양한 변화와 여지를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상당히 뛰어난 그림인데 텍스트에 끌려가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