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The Thing

자카르타 2012. 3. 19. 20:31



괴물 : 더 오리지널

The Thing 
6.6
감독
마티스 반 하이닌겐 주니어
출연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 에릭 크리스찬 올슨, 아데웰 아키누오예-아바제, 조엘 에거튼, 울리히 톰센
정보
공포, 미스터리, SF | 미국, 캐나다 | 103 분 | -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콘텐츠의 저력을 새삼 실감하고 있다. 최근에 읽은 시간 여행자라는 책에서도 글쓴이가 어릴 때부터 과학에 뜻을 품게 만든 공상과학 소설과 TV프로그램의 길고 두터운 역사를 본다. 그를 보면 대부분 90년대 이후 헐리우드의 자산으로만 여겨졌던 것들이 실은 그 이전부터 쌓여온 과학 소설과 만화 등 다양한 콘텐츠의 연장선에 있음을 확인한다. 2011년 발표된 'The Thing : Original' 도 마찬가지다. 누가 했던 얘기처럼 거인의 어께에 올라섰다고나 할까? 이전의 명작들의 성과에 기대면서도 또 다른 재미를 끄는 요소를 갖추고 있다. 


족보를 따지자면 'The Thing'은 51년 하워드 훅스가 연출한 'The Thing from another World'가 원작이다. 물론 이 영화도 존 W. 캠벨 주니어의 'Who goes there?'라는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하워드 훅스의 작품은 82년 한때 공포영화의 거장이라고 불렀던 카펜터 감독이 'The Thing'이라는 단촐한 제목으로 리메이크 했다. 그리고 작년에 나온 'The Thing : Original'이 82년작의 리메이크작이자 엄밀히 말하면 프리퀄로 82년작이 시작되기 직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가 82년작 The Thing을 본 게 언제인지 정확히 그 내용이 뭐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90년도 중반쯤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때 한창 비디오 가게가 성황이었고,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비디오 가이드 책 '열려라 비디오'가 각 장르별로 꼭 봐야할 영화들을 졸라대던 때였다. 그때는 그 비디오 가이드북의 별 네다섯개는 꼭 섭렵하리라는 목표를 가지고 주야장창 비디오를 봤던 것 같다. 아마 '괴물(The Thing의 한국 출시 제목)'도 그 즈음에 봤을 게다. 그때는 어떻게 그런 화질을 잘도 견뎠는지 지금처럼 2.35:1의 비율도 아니고 4:3의 브라운관으로 보는 데도 참 무감하게 영화를 봤던 것 같다. 그래서 이따금 그때 봤던 영화들 중에 근래에 '고전'이라는 이름을 파일명에 달고 공유사이트에 뜨는 영화들이 있으면 다운을 받곤 한다. 아마 그때 영화를 보면서도 이건 제대로 감상하는 게 아니라는, 뭔가 짝퉁을 소비한다는 느낌을 가졌던 것 같다. 


사실 이 영화의 제목을 공유사이트에서 처음 봤을 때는 오리지널이라는 말에 82년도 작품을 얘기하는 줄 알았다. 간만에 옛날 못 살 때의 짝퉁 쓰던 설움을 달래볼까하여 다운 받았더니 왠걸 3분의 1쯤 와서 확인해 보니 이게 2011년 리메이크 작인 거다. 참 영화 전공했다는 말을 하기도 민망하게 특수효과며 종횡비며 여러가지가 다른 데도 전혀 의심 없이 빠져들었다. 

2011년 작이니 효과야 잘해야 당연한 거지 싶고, 이 영화를 보면서 높이 샀던 점은 이야기 전개의 속도다. 비슷한 류의 관습들을 한 박자씩 앞서서 뒤집는 그 리듬으로 영화는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가장 뛰어난 점은 긴장을 구축하는 연출의 솜씨다. 사실 이 두 가지 장점 모두 이전에 만들어진 작품들 속에서 충분히 구현된 바다. 외계인의 정체를 폭로하는 사실 하나만으로 낚시질을 하는 다른 수많은 영화들과는 달리 갈등의 축을 인간들 간의 스파이 게임으로 전환하는 시나리오는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킨다. 


한 가지 더 부러웠던 것은 명작들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진화해나가는 모습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이 영화가 82년작의 프리퀄이라는 걸 알게됐다. 전반적으로는 82년작의 플롯의 구조를 비슷하게 가져가면서도 명작의 앞뒤로 이야기를 증식시켜나가는 것은 콘텐츠의 유산이 있기에 가능한 것일 게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라캉이 이 영화를 봤을까? 봤다면 시니피앙을 바꿔가면서 새로운 갈등의 구조와 의미를 만들어가는, 그리고는 결국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는 'The Thing'이라는 타자에 대해서 반색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