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03
1.
3주째 <공감의 시대>를 읽는 중이다. '공감'이라는 키워드로 인류의 역사를 훑은 1부와 2부는 나름 새로운 정보와 신선한 관점을 제시해 준다. 하지만 근대이후 20세기의 역사에 들어오면 어떤 이물감을 느낀다. 서구 중심으로 설명한 거야 저자가 미국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손 쳐도 60년대 이후 신좌파 운동을 개인의 내면에 집중한 시대로 규정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진보인 양 소개하는 것은, 적어도 한국처럼 아직도 이데올로기 싸움이 첨예한 곳에서는 적절하지 않다. 아니 한국 뿐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폐해로 다시 소유와 분배가 이슈가 되어가고 있는 미국의 현실과도 상당히 동떨어진 진단이 아닌가 싶다. 남은 3부에서 어떤 봉합이 이뤄질지 궁금하다.
그럼에도 중간중간 새롭게 알게되는 사실들은 종종 새로운 영감을 준다. 사이코 드라마의 창시자가 사이코 드라마를 설명하면서 '잉여 현실 surplus reality'라는 말을 썼다고 한다. 가상현실이 한갓 현실의 모사로서의 기능에 고착되었을 뿐 어떤 그 이상의 가치를 찾지 못하고 있는 반면 '잉여 현실'은 얼마나 다양한 가치를 함의하고 있는지 모른다. 잉여라는 말에는 여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 그 현실에서는 얼마든지 다양한 실험과 도전이 가능하다. 지금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잉여 현실이 아닐까 싶다. 실험과 도전, 실패를 넉넉하게 받아줄 수 있는 현실 말이다.
2.
한 아이가 아프다. 얼마 전에 썼던 그 아이다. 그 부모와 함께 일하는 지인에게 전화로 물어보니 아직도 중환자실에 있단다. 그 고통은 아기 예수의 고통을 연상케 한다. 신이 이미 겪으셨으니 그 공감에 의지해 아기의 고통을 없애주시기를 기도드린다. 곧 나으리라. 일어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