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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사설 조선의 실용지식 연구노트

자카르타 2013. 10. 14. 21:55



소문사설 조선의 실용지식 연구노트

저자
이시필 지음
출판사
휴머니스트 | 2011-02-07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18세기 생활문화 백과사전,『소문사설』 『소문사설』은 숙종의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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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실학자하면 성호 이익이나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이나 알까? 이 책의 저자인 이시필은 상당히 낯선 인물이다. 

이시필은 숙종의 어의였다고 한다. 중인의 신분으로 그가 어의로 있으면서 숙종을 위해 여러 음식을 연구하고 또 의원의 자격으로 사신 행차를 따라가서 보고 들은 여러 기록들을 간추린 것이 <소문사설>이다. 이 책은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벽돌식 온돌 제작 방법을 소개한 전항식, 몇 가지 도구의 제작을 설명한 이기용편, 약용 음식의 조리법을 소개한 식치방, 마지막으로 다양한 산업 기술, 생활지식을 소개한 제법이다. 분량으로 치면 '제법'이 단연 많다. 


거의 300년이 지난 지금의 기술 수준으로 <소문사설>을 본다면 거의 픽션 수준의 이야기들도 종종 보인다. 가령 사람이 형체를 안 보이게 하는 방법이라던가, 쓴 돈이 되돌아오게 하는 법, 교미 없이 낳은 알이 부화하게 하는 법, 은을 금으로 바꾸는 법 등을 보면 거의 주술에 가깝다. 실험을 해 보고 실증을 했더라면 도저히 이런 내용을 쓸 수는 없었을 텐데 하는 의구심도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것이 이 시대 사람들이 세상을 파악하는 방법이지 싶다. 안경을 만드는 법에서는 아마 서양의 망원경을 얘기하는 것 같은데 망원경의 구조를 12지의 안경이 겹쳐진 구조로 이해하고 있다. 또 음과 양으로 시력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다. 이건 당시 지식인들이 흠뻑 젖어 있던 성리학의 세계관으로 자연 과학을 표현한 것이다. 세계관 혹은 패러다임이 바뀌기까지는 사실 상당한 실험과 실증과 그 세계관으로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실패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아직 남의 나라의 선진 기술을 박물지처럼 소개하는 책에서는 그런 실증과 실패의 기록을 기대하기는 성급한 일이겠다. 그래도 그 당시의 기술 수준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상당한 가치를 지닌다. 일례로 주방용 칼의 칼 자루를 칼날 등에 이어서 꽂으라고 한 대목을 보면 당시 주방용 칼이 보통 칼과 같이 양날을 가졌고 이 때문에 손잡이에서 칼날까지가 얕아 도마를 칠때 손을 자주 다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지금은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기술도 언젠가 누군가의 혁신에 의해 이뤄진 거라는 걸 보여준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여기에 실린 여러가지 옛 이름들에 대한 사진과 그림 도해가 곁들여지고, 또 여기서 얘기한 것이 실제로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근거가 없는 한계를 지닌 것인지를 여러 분야의 기술, 과학자들의 자문을 얻어 곁들였다면 좀 더 당대의 기술과 사고 방식을 조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