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책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자카르타 2013. 11. 3. 20:29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저자
설흔 지음
출판사
창비(창작과비평사) | 2011-04-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 이야기제1회 창비청소년도서상 교양 부...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문체반정'의 뜻을 알았을 때도 설마 싶었다. 설마 글을 짓는 문체 때문에 탄압을 받는다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분서갱유'야 진시황이 제국을 통일하면서 기존의 통치 체제와 사뭇 다른 체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신구 사상의 대결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당쟁도 노론의 압승으로 정리되고 서서히 세도정치로 들어서는 단계인 정조 시대에, 그것도 학자로서의 면모가 가장 두드러진 임금 중 하나인 정조에 의해서 '문체반정'이 이뤄졌다는 건 아무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책은 정조의 '문체반정'으로 일생을 거쳐 탄압을 받아왔던 이옥과 김려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작중 화자는 김려. 김려는 정조에 의해 '패관소품'이라는 낙인이 찍혀 부령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정승댁 죽은 개 초상에는 가도 죽은 정승 초상에는 가지 않는다던가? 김려는 부령으로 가는 길에서 그리고 부령에서 이어진 유배의 시기 동안 권력을 잃은 자에게 사람이란 얼마나 냉혹하고 잔인할 수 있는지를 뼈저리게 경험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짧은 유배는 차라리 호사라 할 만큼 권력자들로부터 유배된 삶을 사는 백성들의 신산한 삶을 목도한다. 그리고 자신의 알량한 재주, 글을 통해 백성들과 교우하고 백성들을 위로하게 된다. 


그러나 유배가 끝나고 김조순의 배려로 현감 자리를 얻게 되면서 김려는 행여나 자신의 평안을 다시 훼방할까 두려워 세상이 낙인 찍은 글을 철저히 감춘다. 그리고 그 세상에 속해 무던한 삶을 살아가던 즈음 이옥의 아들 우택이 나타난 것이다. 


책은 우택의 등장과 우택이 전하는 이옥의 글, 그리고 김려가 이옥을 화근으로 여기고 절연한 후의 이옥의 삶의 궤적을 보여주면서 다시 김려가 잃었던 글과 문체를 되찾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찾은 것은, 그리고 그의 친구 이옥이 온갖 고초와 탄압, 멸시를 견디면서도 지켰던 글은 바로 삶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진실한 글들이다. 중국의 단어와 수사와 형식을 따르지 않고 우리네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글이다. 

이 책에 실렸던 내용이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역사 사실은 이옥에 비해 순탄한(?) 말년을 보낼 수 있었던 김려가 이옥의 글들을 정리했다는 사실뿐이다. 그리고 그 중의 일부를 김려와 이옥의 아들 이우택이 정리했다는 사실, 그리고 김려는 아주 뛰어난 문장과 글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죽을 때까지 하루에 하나씩 글을 남기며 자신이 옳다고 여긴 것에 대한 확신을 몸소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짧은 책이지만 글에 대한  그리고 삶에 대한 김려와 이옥의 자세를 보면서 마음이 뜨거워진다. 사대부로서 관직의 길을 꿈꾸었던 자들이 문체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음에도 문체를 포기하지 않고 오로지 글을 지키며 살았던 자세는, 작은 초라함도 견디지 못하고 요리조리 지름길을 찾아 헤매는 내게 깊은 잔영을 남긴다. 오랜만에 가슴이 벅차게 하는 좋은 글을 읽었다. 


그리고 덤이지만 그 전부터 정철을 보면 이해가지 않는 게 있었다. 임금으로부터 홀대를 받아 먼 시골에 발령받은 상태에서 어떻게 임금을 사모하는 노래를 지을 수 있었으며 그건 또 어떻게 임금의 귀에까지 들리게 된 걸까? 정철은 진심일까? 아니면 글로 하는 로비 혹은 아부일까? 이 책을 읽다보면 그런 일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당시 사람들이 글을 어떻게 다뤘으며 당시 사람들에게 글이란 작가란 무엇이었는지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