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종사
글쎄 잘 모르겠다. 작년에 보고 이번에 리뷰 쓰려고 다시 봤는데도 여전히...
연말에 만난 지인 중 하나는 이 영화를 보고 '이미지만 둥둥 떠다니는 영화'라고 했고 다른 친구들은 역시 왕가위 표 영화에 환호를 보냈다. 나는 워낙 지루하게 본 탓인지 리뷰를 쓰려고 다시 생각해 보니 도무지 생각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아래 장쯔이의 무술 장면도 몇몇 이미지만 생각이나지 도대체 왜, 누구랑 싸웠는지도 생각도 안나고. 그리고 여전한 의문은 그거다. 도대체 왕가위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뭘 보고 그렇게 열광을 하는 걸까? 그게 궁금하기도 했다.
다시 본 지금도 여전히 아리송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번에 봤을 때보다 훨씬 재밌기는 했다. 35년도 무술의 고수 궁씨가 은퇴를 하면서 후계자를 세우기 위해 엽문과 대결하는, 결국은 엽문을 후계자로 세우고 이에 발끈한 궁씨의 딸 궁이가 엽문과 결투하는 내용. 38년 불산이 일본에 침탈당하고 궁씨는 그의 제자 마삼에게 살해당하고 궁이가 복수를 벼르는 무렵의 얘기. 훌쩍 건너 뛰어 50년 홍콩으로 건너간 엽문이 궁이와 재회하는 얘기. 다시 시간을 거슬러 40년 궁이가 마삼에게 복수하는 얘기. 그리고 52년, 궁이가 죽기 1년 전 마지막으로 궁이와 엽문이 만나는 장면. 마지막으로 엽문의 후일담으로 이뤄져 있다.
자막 파일을 바꿔 봤음에도 여전히 대사는 모호해서 영화를 제대로 봤다고도 할 수 없겠다. 영화에 줄곧 나오는 연기처럼 모호한 느낌들 뿐이랄까? 물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게 왕가위의 영상은 훌륭하다. 스틸 사진처럼 인물의 정을 묘사할 때도 유려한 카메라 워킹을 이용해 동을 묘사할 때도, 클로즈업이든 롱샷이든 화려하기 그지없다. 어쩌면 그 영상들은 인과관계로 짜여진 플롯을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느낌들을 전하려고 작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생을 바쳐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산 사람들, 그들에게 더 이상 사명이 남지 않았을 때의 뒷모습을 담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아, 새로운 발견이랄까? 이전까지 장쯔이의 연기가 어떻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궁이의 절제된 감정, 미묘한 표정의 변화 등은 상당히 매력이 있었다. 영상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