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Vicky Cristina Barcelona

자카르타 2014. 1. 5. 16:13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2009)

Vicky Cristina Barcelona 
7.8
감독
우디 앨런
출연
스칼렛 요한슨, 페넬로페 크루즈, 하비에르 바르뎀, 레베카 홀, 크리스토퍼 에반 웰치
정보
로맨스/멜로 | 스페인, 미국 | 96 분 | 2009-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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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왜 이렇게 번역했을까? 영어의 발음을 그대로 한글로 써 놓은 제목도 무성의, 무개념으로 보이지만 이렇게 전혀 엉뚱한, 혹은 오독을 부르는 제목은 안습이다. 물론 이렇게 제목을 붙이고 포스터에 여자 둘과 남자 하나가 나오면 관객은 좀 더 끌 수도 있겠다.  


제목에 맞는 내용이 있긴 하다. 초반에 안토니오는 크리스티나와 비키에게 쓰리섬을 제안하기도 하고, 중반에 가면 딱 영화 포스터에 나오는 장면-크리스티나와 안토니오 그의 전처 마리아가 동거하는 장면도 나온다. 재미로 따져도 셋의 동거 이야기가 제일이다. 정서가 불안한 마리아가 자살을 시도하자 안토니오는 '안정될 때까지'라는 단서를 달고 마리아를 집으로 들인다. 크리스티나가 안방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야 말로 '굴러온 돌'임을 절실하게 느낀다. 크리스티나에게는 안토니오를 이끌어줬던 마리아의 재능 같은 것도 없고 마리아처럼 그와 깊은 교감을 이루지도 못한다. 그러나 삼각관계는 뜻밖의 방향으로 전개된다. 마리아는 (아마 안토니오에게 했을 것 같은 방식으로) 크리스티나의 감춰진 재능을 끌어내고 크리스티나는 불안한 마리아와 안토니오 사이의 균열을 메워준다. 이들의 삼각관계는 공생의 관계를 넘어 서로 사랑하는 단계로 발전한다. 


현실의 윤리가 터부시하는, 또 반면 은밀히 욕망하는 이 삼각관계가 영화의 중심은 아니다. 우디 앨런은 이 관계의 아름다움을 애써 과장하지 않고, 그렇다고 또 다른 갈등의 단초로 삼지도 않는다. 이 점이 요즘 우디 앨런의 영화를 보면서 감명을 받는 부분인데, 그는 사람들에게 감춰진 욕망을 끄집어 내면서도 그 욕망에 대한 어떤 잣대도 들이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욕망에 이끌려 혹은 그 욕망의 반대급부로 플롯을 전개하지도 않는다. 그는 그 욕망을 가뿐히 뛰어넘어 그저 인생의 한 부분으로 긍정하고 따뜻하게 바라볼 뿐이다. 


삼각관계 시퀀스는 크리스티나의 삶과 사랑의 방식을 보여줄 뿐이다. 크리스티나가 다시 자신의 꿈틀대는 욕망을 쫓아 길을 떠나면 이제는 영화의 원제에 충실하게 비키의 사랑을 보여준다. 비키는 크리스티나의 선택지를 택하지 못한다. 비록 마리아의 돌발행동이 비키의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지만 아마 그 사건이 없었다 하더라도 비키는 마지막 그의 정착지인, 신랑과의 신혼집으로 향했을 게다. 크리스티나가 비키의 얘기를 듣고 안타까워 하는 장면에서 비키는 그저 한 순간 지나간 일일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의 얼굴을 한동안 보여준다. 비키의 눈에 담긴 의지라도 보여주려는 것처럼. 그러나 바로 이어진 공항 씬에서 비키와 크리스티나의 눈빛은 인생의 한 장을 넘긴, 그러나 별로 달라진 것도 없고, 앞으로 그런 비슷한 장들을 수없이 넘겨도 또 여전하게 살아갈 보통 사람들의 표정이다. 


우디앨런의 최근 영화부터 거꾸로 보는 중인데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을 보면서 어제 봤던 <미드나잇 인 파리>가 떠올랐다. 거기서 현실인식의 부족이라고 자조하던 장면 말이다. 왜 우디 앨런은 외국의 낯선 곳을 일상의 균열을 내고 판타지를 끌어내는 장소로 사용하는 것일까? 현실에서의 도피가 아닐까? 그런 혐의가 짙다고 생각했고,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의 자각 이후에 (역시 판타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 판타지의 영향력을 무력화 하면서 현실과의 화해 혹은 회귀를 지향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했다. 영화를 다 본 지금은 오히려 그 반대다. 적어도 이 세 작품을 관통하는 주된 정서는 현실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다. 한계가 뚜렷하고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 그 현실들을 우디 앨런은 오히려 지긋이 응시하고 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그의 서사에서 판타지는 더욱 사랑스러운지도 모르겠다. 아마 아래 사진의 우디 앨런의 표정이 모든 것을 얘기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 요즘 본 세 작품에서 공히 느껴지는 건데 재능이 없는 예술가에 대한 격려도 느껴진다. 일찌감치 성공한, 못하는 것이 없는 우디 앨런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