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All is Lost

자카르타 2014. 2. 8. 17:45


올 이즈 로스트 (2013)

All is Lost 
8.3
감독
J.C. 챈더
출연
로버트 레드포드
정보
액션 | 미국 | 106 분 | 2013-11-07
글쓴이 평점  



바닥을 쳤다고 하나? 모든 것을 잃고, 이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작을 모색하는 상황을 말할 때. 

이 영화도 제목과 줄거리를 본다면 뭐 그런 식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교훈이야 요즘 흔하디 흔한 힐링 강좌에 가면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것이라 별다른 감흥이 없다. 이 영화를 보면서 재밌었던, 그리고 감명 깊었던 것은 그보다는 다른 지점들이다. 


이 영화. 일단 대사가 하나도 없다. 극이 시작할 때 깔리는 나레이션을 제외하고는. 영화 시작 후 곧바로 배가 침몰하게 된 상황을 보여주면서 조난 과정과 결말에 이르기까지 로버트 레드포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화물선 두 대가 지나갈 때 그가 소리를 지르지 않는 건 좀 색달랐다. 내 머릿속에 각인이 된 조난 영화라고 하면 <캐스트 어웨이>일 텐데, 거기서 유조선인지 유람선인지 커다란 배가 지나갈 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톰행크스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는 볼 수 없다. 오랜 침묵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조난 생활에 목소리가 잠긴 것일까? 아니면 소리를 질러도 들을 수 없는 거리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까? 여러가지로 상상을 할 수 있지만 나는 제일 후자가 그럴 듯 하다고 추측한다. 


그 흔하디 흔한 독백이나, 헐리웃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유쾌한 농담을 즐기는 낙천주의자의 모습은 볼 수 없다. 배가 침몰의 위기에 처하는 순간부터 주인공은 오로지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데 전력한다. 그는 마치 어떤 목표물을 쫓으며 지름길을 탐색하는 동물 같다. 그에게는 상황에 한탄할 여유도, 신에게 저주를 퍼붓거나 무릎을 꿇을 시간 조차도 없다. 무선 기기가 소금물에 젖자 식수를 아껴 닦아내고 말린 후 연결을 한다. 그의 행동은 마치 조난 시 매뉴얼을 보여주는 것 같다. 플랜 A를 하고 실패하면 플랜 B를 찾는다. 폭풍이 친 다음날 배가 가라앉을 상황에서도 그는 어떤 상자를 기어코 꺼내온다. 이름은 정확하지 않은데 태양을 보고 위도와 경도를 가늠하는 분도기(?)다. 주인공은 구명선 위에서도 지도를 말려가면서 자신의 위치를 기록한다. 


그걸 보고 희망이라거나 삶에의 집념이라고, 다분히 감상이 어린 말로 재단하기에는 상당히 색다른 모습이다. 아마도 처음 나레이션이 적혀있을 것 같은 편지를 써서 바다에 던지려다가 멈추는 모습과 모든 것을 잃은 뒤에 스스로 바다 아래 가라앉는 모습은 마치 무사의 마지막과도 같이 비장했다. 맞다. 그건 자존이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을 잃고 오직 생존만을 위해 달려가야할 상황에서도 그가 책을 읽으며 분도기를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처음 나레이션에 그가 했던 얘기처럼 마지막의 자신의 모습이 어떠하기를 바랐던 상이 분명했기 때문일 게다. 


영화를 통틀어 한 번도 주인공의 과거의 삶의 모습이나 가족의 이야기, 직장의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충분히 알 수가 있다. 또 하나의 성찰을 얻는다. 한 인간의 삶은, 한 순간의 단면에서도 드러날 수 있다. 혹은 알 수 있다. 고립된 지경에 처한 인물을 그린 면에서는 <그래비티>와 비슷하지만 그 묘사와 전개에 있어서는 사뭇 다른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