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해경
<산해경>을 추천 받은 것은 아주 오래전이다. 학교 다닐 때였으니 십몇년 전의 일이다. 소개해 준 분은 상상력의 보고라 하셨다. 역시나 그 소개가 무색치 않다. 지리서이기도 하고 박물지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설화집이기도 한 <산해경>에는, 그 텍스트를 그림으로 다시 그리는 수업을 일년 진행해봤으면 싶을 정도로 판타지에서나 볼 것 같은 다양한 식물과 동물들 그리고 괴수와 요괴들이 나온다. 몇 가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실에 있는 동물들을 해체와 재조합한 것들임을 알 수 있지만 칸트가 정의한 '상상력'이 바로 이런 해체와 종합이니 상상력을 훈련하는 데에는 썩 훌륭한 교재다.
이번에 읽은 책은 저자가 원본 <산해경>에 여러 설화를 덧붙인 것이라고 한다. 단연 그 설화의 주인공은 '우 임금'이다. 우 임금의 설화가 대거 들어간 이유는 이 <산해경>의 저자가 우 임금이라는 설이 있기 때문이란다. 우 임금이 치수를 위해 천하를 돌아다니며 본 것들을 기물에 기록했고, 그 기물을 문서로 옮긴 것이 이 <산해경>이라는 주장이다. 최근에 와서는 그 설을 반박하는 주장들이 힘을 얻고 있다고 하지만 편저자는 우 임금 저자설에 근거로 해서 편저했던 모양이다.
한가지 재밌는 것은 이 편저자가 고전의 새로운 해석과 대중화에 열성을 보이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가 생각하는 고전은 매 시대에 그 시대의 언어로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그래서 편저자는 이 책에 다양한 도판들을 곁들였다. 지금으로치면 옛 그림들도 많지만 최근 작가들-언뜻 보기에 일러스트에 준하는 작품들도 대거 넣어놓았다. '고전 쉽게 풀어쓰기'는 지금도 내가 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다. 어떤 플랫폼을 만들어 대중들이 함께 고전을 풀고, 자료들을 곁들일 수 있게 하는 것이 아직도 꿈으로 남아 있던 차에 좋은 전범을 본 것 같다.
새삼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비거에 관한 자료를 얻으려고 본 것이라 대충 읽기는 했지만 나중에 시간을 들여 상상력 훈련의 도구로 삼음직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