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견기념관
집 근처에 안견 기념관이 있다는 건 여기 이사올 때부터 알았는데 오늘에서야 가봤다.
지곡면사무소에서 한 백여 미터 올라가면 언덕에서 지곡면을 내려다보는 기념관이 보인다.
위 사진은 기념관 주차장에서 지곡면을 내려다 본 풍경.
찾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주차장엔 온통 저런 들풀들로 가득하다.
기념관 입구. 오기 전에 혹시나 해서 전화를 걸어봤더니 요즘 한창 공사중이라 시끄러울 거라고 했다.
기념관 정면. 뭔가 살가운 느낌은 안 드는 건물이다. 벽면의 흰색 때문에 창백해 보이기도 하고.
자, 드디어 전시장. 전시물들은 조촐하다. <몽유도원도>도 원본은 일본에 있으니... 한편으로는 이렇게 전시할 것이 없는데 굳이 전시장까지 만들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전시된 <몽유도원도>는 한국의 작가가 원본을 보고 그린 모작이라고 한다.
설명글에 보면 <몽유도원도>의 오른쪽인 위 사진은 도원 즉, 선계를 의미한다고 한다. 반면 그림의 왼쪽인 아래 사진은 현실계를 의미한다고. 따라서 안평대군이 꿈에서 현실계에서 도원으로 넘어가는 경로를 왼쪽에서 오른쪽에 걸쳐서 펼쳐놓았다고 한다. 구도상으로는 현실계는 옆에서 본 각도이고, 도원은 위에서 내려다 본 구도라고 하는데 내가 보이기 딱히 구별이 가진 않았다. 그리고 서양처럼 시점을 따지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과연 안견이 시점을 구분해서 그렸을지도 의문이다. 아니면 우리 중세 그림에도 '시점'이란 게 있었을까?
위 사진은 <몽유도원도>의 왼쪽, 현실계를 담았다는 부분이다.
이 그림들은 안견이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그림들이다. <사시...>뭐라고 하던데...
그림 설명에는 사계절을 8폭의 그림으로 그려 화첩을 만들었다고 한다. 가령 봄이면 이른 봄과 늦은 봄이 마주보게 그렸다고.
각장의 그림은 한쪽에 배치가 쏠려 있어, 그림을 마주보게 해야 비로서 대칭이 맞는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전시도 그렇게 했어야 하지 않을지.
정작 현실은 저렇게 '조춘'과 '만춘'의 그림이 따로 배치되어 있고, 게다가 가운데 뙇!
안내하시는 분이 공사중이라고 했으니 이건 그런가보다 하겠지만 그림의 배치는 조금 아쉬움이 있다.
아울러 유물을 전시하는 최적의 조건은 뭘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 첫재 조건이 원본을 그대로 전시하는 것이지 않을지.
위 사진은 앞의 사진의 오른쪽 '상춘'.
중앙에는 <몽유도원도> 사본이 펼쳐져 있다. 위 사진은 그 제일 앞에 설명글인데 실제는 아래 사진처럼 <몽유도원도>의 배치가 눈에 들어온다. 달랑 그림만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제목과 함께 그림과 그 그림에 대해 안평대군의 지인들이 덧붙인 시와 글들이 쭉 연이어 붙은 형태였다. 처음에 이걸 만들었을 때 얼마나 뿌듯했을까?
위 사진은 반대쪽 그러니까 두루마리의 끝에서 본 모습.
안평대군이나 하는 권력자니까, 꿈꾼 내용을 화가에게 그리게 하고 꿈에서 등장한 사람들에게 감상을 덧붙이게 하고 또 다들 흔쾌히 응했겠지만, 요즘에도 이런 걸 해보면 좋겠다. 이거야 말로 멀티미디어, 협업, 통섭이 아닌가?
누군가 자신이 꾼 꿈을 이야기하고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은 그림을 그려주고, 시를 쓸 줄 아는 사람은 시를 쓰고. 에세이를 적을 수 있는 사람은 에세이를 적어주고.
전시 품은 대략 이 정도다. 한쪽에 안견과 동시대의 비슷한 풍의 다른 그림들이 (모두 사본이지만) 전시되어 있고, 위의 두루마리 앞에 <몽유도원도> 세배 키운 병풍이 있다.
한바퀴 돌고 나오는데 뙇 지곡면의 풍광이. 저 멀리 서울로 바삐 가고 있는 송전탑 거인들도 보이고. 서산은 저게 꽝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