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 센텐스
우연히 케이블에서 나오길래 찾아 봤다.
닉의 아들이 강도들에게 살해당한다. 범인은 잡혔지만 증거가 불리해 살인죄로 기소할 수가 없다. 닉은 범인을 풀어주도록 증언을 바꾸고 복수에 나선다. 범인이 닉에게 살해당하자 이번엔 범인이 속한 갱단에서 복수를 맹세하고 나선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으나 결국 닉의 아내가 범인들에게 살해당하고 둘째 아들도 총에 맞아 깨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신은 닉을 다시 살아나게 하셨다. 닉은 이제 가족의 원수를 갚기 위해 나선다. 경찰들이 닉의 복수를 막으려고 총력을 기울이지만 결국 닉은 복수를 완료한다.
아마 복수에 관한 영화들을 일별하던 차에 봤던 것 같다.
이 영화는 복수의 플롯의 전형을 충실히 따른다. 주인공이 가족들이 처참하게 도륙당하는 것을 바로 곁에서 목격을 하고,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경로가 차단당한다. 그리고 여전히 악당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고 더 심한 죄악들을 저지른다.
이렇게 복수 플롯의 전형을 고스란히 반복하는 영화이지만, 아니 그래서인가? 재미가 없다. 개연성의 문제일까? 처음 범인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는 장면까지는 소시민에서 자경단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의 내면의 갈등이 상당히 세심하게 그려지지만 이후 주고 받는 복수전에서는 여러가지 정황들이 신빙성을 잃고 있다. 갱단의 복수가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단지 순찰조의 감시에만 의존하고 무방비 상태에 있었다는 것이나, 갱단의 총탄을 맞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마지막 갱들과의 총격전은 마치 홍콩 영화의 플롯을 보는 것만 같다. 감독이 중국사람이라 그런 건가? 지금 찾아보니 감독인 제임스 완은 말레이시아 출신이라고 한다. 게다가 <쏘우>, <인시디어스> <컨저링>의 감독이라니! 딜레마와 갈등의 요소를 기계장치로 탁월하게 묘사해낸 그 솜씨는 이 작품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찌보면 복수의 플롯이 이제 관객들에게 새 경험을 주기에는 너무 철지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복수라는 소재가 전근대의 정서이지만 여전히 정의의 공백에서 꾸준히 호출되는 소재이기는 한데, 이제 다시 복수를 얘기하려면 그 딜레마의 다면성을 풍성하게 표현해내야하지 않을까? 지금 내 리뷰 목록을 보니 <퍼펙트>라는 영화가 보인다. 이 영화도 역시 가족을 잃고 복수에 나선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주인공과 또 다른 복수를 꿈꾸는 여인과의 사랑의 플롯을 통해서 미래와 과거로 나뉜 갈림길에서 주인공이 갈등할 수 있는 설정을 만들어 놓는다.
이런 복합 플롯이 아니면 더 이상 단일한 복수의 플롯으로는 관객들에게 공감을 얻어내기가 어렵지 않을까? 아니 지금 현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거지만, 오히려 그래서 정의의 공백 속에 살고 있는 관객들에게 케빈 베이컨의 복수 판타지가 그다지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