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
인간의 내면의 악은 어떻게 드러나게 되는가? 그 과정을 정밀하게 그려낸다.
선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어업을 포기하는 선장, 그는 아내의 불륜도 눈감아줄 만큼 유약한 사내다. 그는 자신의 전부인 배를 폐선시키지 않기 위해 밀항을 돕기로 한다. 그러나 단속을 피해 밀항자들을 어창에 넣으면서 사단이 벌어진다. 냉매 가스가 새는 바람에 사람들이 모두 죽자 이들을 바다에 버리기로 한다. 선장은 시신이 물에 뜨지 않게 하려고 토막을 내게 한다.
그러나 밀항자들 중에 홍매가 유일하게 살아남는다. 홍매는 선원 막내인 동수가 기관실로 피하게 하는 바람에 참사를 모면했다. 첫번째 죄악이 국외자들, 밀항자들에 대해 벌어진 일이라면 두번째 죄악은 내부인이지만 기록이 되지 않은 무적자에게 벌어진다. 어떤 문제로 신고하지 않고 배에 올라탄 기관장은 죄책감으로 착란에 빠지고 죄가 드러날 것이 두려운 선장은 기관장을 죽이고 바다에 버린다.
그리고 결국 홍매도 선원들에게 들키고 만다. 홍매가 선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선장은 홍매를 죽이려하고 그걸 말리는 과정에서 선원들의 광기가 드러나면서 결국 전진호는 전진하지 못하고 가라앉게 된다.
양파 껍질처럼 구성원 중 가장 외부에 노출된, 가장 약한자들을 향한 폭력의 매커니즘을 논리적으로 구성해 보여준다. 폭력의 광기를 개연성 있게 드러내는 것은 김윤식의 연기도 상당한 몫을 차지한다. 닫힌 세계의 위험성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도 과장되지 않게 표현할 수 있을까? 연출과 시나리오도 뛰어나지만 배우들은 한결같다. 모두 자신의 논리아래서 성큼성큼 광기로 치닫는다.
세월호 유가족을 비하한 배우의 SNS에 동조 댓글을 단 사람이 이 영화 단역으로 출연했다고 해서 영화 거부 운동도 일뻔 했다. 영화가 흥행을 하지 못한 게 그 때문이 아니냐는 시선도 있는 것 같은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영화의 내용 때문이겠지. 인간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매력 있는 영화는 아니다. 이러면 또 영화는 관객에게, 나에게 어떤 것인지 자문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이 영화가 흥행하지 못한 것이 과연 내용 때문만일까, 의심도 든다. 뚜렷하게 클라이막스를 이루는 곳이 없는 것도 문제 중 하나다. 홍매를 지키려고 선장과 싸우는 부분이 아마 절정일 텐데 그 절정에 어떤 감정이 해소되는 느낌이 없다. 그게 뭐여야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감정의 결여를 메우기 위해 마지막에 에필로그 식으로 붙이는 것은 그저 사족이 아니었나 싶다. 그 마지막 에필로그는 영화가 일관되게 얘기해 온 방향을 애매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