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부탁해
저자인 권석천 기자가 중앙일보 시시각각 코너에 쓴 글을 모은 책이다. 처음 시작이 2012년 1월이었던 탓에 칼럼의 내용은 이명박 정권 말기와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졌던 정치 사회 경제 안보계의 여러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인식에 큰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라며 책의 제일 첫머리에 평택항에서 보낸 2014년 4월의 기록을 소개하지만 그 이전의 기록이나 그 이후의 기록에서 일관되게 그가 주장하는 것은 '원칙이 나를 삼킬지언정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얘기다. 때로는 이러한 태도가 진보 진영에서 부당함을 주장하는 사안에 대해 다른 이견을 내놓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회의를 반박하는 그의 논거들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고 그가 차가운 논리, 시스템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다양한 사람들에게 감정이입해서 그들의 시점으로 풀어내는 글을 보면 여느 작가 못지않은 공감을 위한 수고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법을 전공하고서도 차마 그 길을 가지 못하고 돌아서게 만든, 정의의 실천에 대한 물음을 저자는 이렇게 공감의 글쓰기를 통해 실천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마사 누스바움이 얘기한 시적정의 말이다.
시간이 되면 밑줄 그은 것들을 일일이 적어서 공유하고 싶은 책이다. 그렇게는 못하지만 시나리오를 쓰겠다는 내게도 울림이 되는 구절이 있어 그것만 따로 적는다.
"(이번 법원의) 결정문은 한사코 '정당화의 논리'에 머물렀다. 남아공의 알비 삭스 전 헌법재판관이 제시한 판결문 작성 네 단계(발견의 논리 > 정당화의 논리 > 설득의 논리 > 마음을 울리는 마무리) 중 두 번째 단계다. 삭스는 "재판관으로서 나는 내가 쓴 판결문의 독자들에게 그 결과가 정의롭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 252쪽
이제껏 법은 차가운 차가운 메스도 아니고 논리에 능한 컴퓨터로 대체할 수 없다는 얘기다. 법조차도 이런데 문학이나 시나리오는 말할 것도 없겠지. 하지만 돌아보면 내 글들도 편성권자를 설득하기 위한 정당화의 수준에 머물렀지 저 끝의 단계는 아직 먼 것이 아니었나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