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검은 집

자카르타 2016. 2. 23. 16:31




2007년에 이 영화를 보고 썼던 리뷰를 다시 찾아봤다. ‘뒷부분의 허접한 연출에도 불구하고 2007년 최고의 공포영화로 꼽겠다고 썼더라. 희생자인줄 알았던 인물이 사이코패스로 드러나던 플롯이 상당히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원작을 읽고 두 번째 보는 <검은 집>, 반전의 쾌감은 없었지만 각색에 있어서는 여전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원작을 읽으면서 의아했던 지점들이 몇 군데 있었다. 사치코가 사이코패스로 드러나기까지의 과정에서 충격이라 할 만한 효과가 거의 없다는 점이 우선 그렇다.

사치코가 처음 등장하는 보험 창구 씬에서 검은 집의 악취와 사치코의 향수를 연결시키면서 이미 독자들은 자연스레 사치코에게 혐의를 두게 되지 않을까? 이후 사이코패스로 오인되었던 고모도의 과거에 사치코가 깊이 개입했었다는 사실이며, 프로파일러 가나이시의 분석 등을 거치면서 사치코에 대한 심증은 더욱 깊어진다. 신지는 독자보다 훨씬 뒤늦게 사치코의 정체를 깨닫게 되는 셈이다.

 

영화 <검은 집>의 각색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신지의 한국판인 전준오(황정민 분)가 사치코의 한국판인 신이화(유선 분)의 감정선이다. 원작 소설에서 산만하게 정보를 누설하는 요소들을 배제하고 신이화에게 예비 피해자의 이미지를 분명하게 덧씌워 전준오가 신이화에 대해서 오해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또 이 과정에 애인 미나를 개입시키면서 유사 삼각관계로 감정의 결을 더 복잡하게 쌓아간다. 이런 갈등들이 중첩된 다음에 신이화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배치한 덕에 모든 플롯을 다 알고 봐도 신이화의 정체가 드러나는 장면이 주는 효과는 여전히 새롭다.

 

그 밖에도 원작에서는 알 수 없는내용으로 접어두었던 특별조사원의 죽음을 새롭게 구성한 것이나, 원작과는 달리 보험금 지급이 늦어지는 이유를 전준오의 책임으로 돌리고, 그와 박춘배가 충돌하게 만든 것도 현명한 선택이었다.

 

각색의 장점이 분명한 영화지만 연출면에서는 상당히 아쉬운 부분들이 많다. 주인공 전준오가 모든 상황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대사를 남발하는 것은 각색의 탓이기 보다는 연출의 책임이 크다. 시도 때도 없이 휴머니즘을 남발하는 전준오를 보면 그야말로 감정이 없는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원작에서 형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동생에 대한 트라우마로 바꾼 것이야 작가의 재량이겠지만 원작에서 죄책감이 오해에서 비롯되었음이 드러나는 것에 비해, 영화에서 그 죄책감을 끝까지 주인공의 휴머니즘의 원천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도 억지스럽다. 전적으로 수정된 과거 에피소드가 어색한 탓이다.

 

이래저래 참 영화란 게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