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침공
4년 동안 시나리오를 쓰면서 남는 건 겸손뿐이다. 예전 같으면 이런 영화를 보고 잘근잘근 씹었을 텐데 이제는 그저 안쓰럽고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를 추측하게 된다.
클로이 모레츠의 시나리오 선구안을 의심케 하는 영화이긴 한데, 원작이 베스트셀러 소설이라니 어떤 사연이 있음직도 하다. 영화에 망조가 든 건 클로이 모레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장면이 아니었던가 싶다. 이미 클로이의 아버지가 사망의 깃발 올리신 건 감을 잡았는데, 이상하게 이 장면에 위기감도 없고 시퀀스가 지났을 때 개운하게 정리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 장년 피란민들을 죽이는 군인들이 악역인지 아닌지, 애매하게 묘사가 된 탓이다.
물론 군인들이 외계인에게 사로잡혔다는 것을 끝까지 숨기면서 서프라이즈를 노린 것 같기는 한데, 전개되는 양상은 영락없이 이들을 의심케 하는 터라 실효성이 없는 기획에 그친다. 결국 군인들이 훈육하는 아이들은 인질인 셈인데, 이 상황이 줄 수 있는 긴장을 오히려 강조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래야 뒤에 클로이와 재회할 때 긴장감이 생길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이 플롯 – 동생은 외계인의 수하에, 누나는 레지스탕스로 나뉜 상황에서 전개되는 플롯에서 가장 중요한 긴장은 동생과 누나의 대립일 텐데 그런 요소는 전혀 살리지 않았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패착이 아니었던 것 같다. 외계인들이 무력하게 근거지를 잃는 것이야 <인티펜던스 데이> 류의 영화들이 안착하는 클리셰가 된지 오래지만, 그 이전의 긴장감 없는 전개, 전혀 놀랍지 않은 반전들이 더 부아가 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