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부검
자살자가 남긴 여러 자료들을 근거로 자살자의 심리를 분석하는 심리부검은 주로 자살과 타살, 사고사를 가리기 위해서 실행된다고 한다. 이 책은 30여개의 자살 사건을 소개하면서, 죽음을 회피하려는 인간의 본능을 뛰어 넘은 자살자들의 의지는 곧 살고 싶다는 의지와 호소였다고 해석한다.
십여 년 전 자신을 성폭행한 시동생을 처벌해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택한 40대 여성,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장교의 꿈을 접고 고향에서 돼지를 키우다 구제역 때문에 모두 살처분 한 뒤 자살한 청년, 트렌스젠더임을 밝혔다가 사랑하는 남자가 변심을 하자 비관해 죽은 여성, 부모에게 버림받고 조부모 손에 자라다가 진학의 꿈을 이루지 못하자 자살한 청소년들...
각 장을 넘길 때마다 사회로부터 고립된 이들을 만난다. 그리고 한발만 삐끗하면 낙오되고, 고립될 수 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한계를 절감한다. 저자는 앞으로도 심리부검이 늘어나서 자살자들의 징후를 포착하고 이를 예방할 수 있기를 바란다지만, 이미 사회는 낙오자들이 사라지기만을 바라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회는 왜 점점 더 가파르고 험해지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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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부검이란 자살한 사람이 남긴 자료를 분석하고 남겨진 사람들과의 면담을 통해 사망자가 자살에 이르게 된 원인을 찾아내는 과학적 도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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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자나 필자나 근본적으로는 아무 차이가 없다는 것, 자살자가 경험한 그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이나 필자가 살고 있는 멀쩡해 보이는 세상이 구분되지 않는 정확히 동일한 세상이라는 실감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심리부검은 자살자가 정말 죽겠다는 의지가 있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 죽겠다는 의지를 찾느라 애쓰다 보면, 그 죽겠다는 의지가 사실은 살고 싶다는 의지, 살려달라는 내면의 호소였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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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성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알몸 상태에서 발견되기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욕조에서 익사한다는 것은 자살로서는 드문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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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를 주장하는 수형자의 사건을 재조사하는 이너슨스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140명의 새로운 진범을 찾는 성과를 거두었다. 실제 죄 없는 수형자들은 평균 14년을 복역한 상태였고, 살인의 누명을 쓰고 30년 이상을 교도소에서 복역하다 풀려나고 있는 경우가 333건(2015년 기준)에 달하고 있다.(http://www.innocenceprojec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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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의 죽음에 대한 감정적 표현이 없고 부인을 그녀라고 지칭하는 등 대화상에 어색한 부분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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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금껏 수많은 유서를 봐 왔지만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한 경우는 얼마 되지 않았다. ... 유서는 간단한 메모장에 남기는 것이 보통
보통 고유명사는 대명사로 전치되거나 생략되기 쉬운데 이 유서는 가족이라도 계속 이름을 쓰거나 꼬박꼬박 호칭을 드러내 어색함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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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삼중의 중복적인 자살 방법을 이용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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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살아남은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더 이상 자살을 시도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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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련의 연습 과정 끝에 본능이 그어 놓은 절대 한계선을 넘는 단계가 오면 이제 완전히 다른 세계, 죽음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 그 순간까지 자살자가 느꼈을 심리적 고통과 절망은 측정조차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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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노출 효과 혹은 둔감화라고 설명하는데.... 특히 육체적 고통이 극한에 이르는 직업인 건설 노동자, 운동선수, 군인, 경찰관 혹은 폭력이나 상해와 관련되어 있는 범죄자, 혹은 죽음을 자주 직면하고 이들의 모습을 자주 목격했던 외과 의사 등에서 높은 자살률을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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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많이 나타나고 있는 사건 중 하나는, 남녀가 격정적인 성관계를 시도하다가 상대의 목을 눌러 성적 쾌감을 극대화하던 중에 목을 계속 눌러 사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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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의 방식은 근접성, 안정성, 유용성에 따라 결정된다. 가능하면 자신의 주변에서 가장 친숙한 도구를 이용해서 안정적으로 자살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때 집을 잘 치운다거나 청소하는 등의 행동은 하지 않기 때문에 평소처럼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는 게 보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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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에 끓어 먹었던 라면 포장 비닐, 음식 찌꺼기가 분리수거 쓰레기통에 담겨 있고, 유서가 밥상 위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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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에 온통 가득 차 있던 신문과 폐지 더미에 놀랐던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로 인해 사망자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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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리에 끈을 고정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 때는 하체가 지면에 닿아 있는 상태임에도 목이 계속해서 압박되어 질식으로 인해 사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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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타살을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 사람을 죽인 후 목에 끈을 감고 문고리에 걸어 놓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현수점이 다르거나 삭흔이 여러 갈래로 나와 있고 옷이 쓸리거나 부자연스럽게 보여 자살과는 다른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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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상대방이 잘 알아보고 이해가 될 수 있도록 글을 정자로 썼고 2건의 경우는 일반적인 유서로서는 드문 경우지만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하여 가독성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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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부검이 유족이 아닌 보험사나 고용주의 편에 있을 때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 전형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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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을 다루는 이론과 기법이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인가, 동료 심사와 학회 출판이 이루어진 것인가, 사용된 기법의 오차율이 보고되었는가, 기법을 활용할 때 적용 규준이 있었는가, 이론과 기법이 학회에서 폭넓게 허용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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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실시한 심리부검은 상당수의 음독자살이 항우울제인 파록세틴의 과다 복용 또는 부작용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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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는 1991년부터 일반 방문 환자라도 보건소와 병원에서 마치 혈압이나 혈당 측정하듯 쉽게 우울증이나 자살 충동을 검사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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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자살자가 8자 매듭을 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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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로 위장하려는 시도는 치밀한 성격과 범죄의 숙달, 보통 이상의 법적 의식이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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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무슨 말을 할지,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등을 치밀하게 준비한 내용이 시기별로 깨알같이 기록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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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군대를 가지 않아 전과자이거나 군 소집 명령을 받았음에도 응하지 않아 수배가 된 상태여서 제대로 된 직장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도 중요한 점이다. ... 전과자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취직이 쉬운 술집에서 종업원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한국 사회 구조에서 이들은 취약 계층 혹은 아웃사이더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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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신었던 신발의 문양과 일치했다. 절벽 위에서 낭떠러지 아래를 내려다보며 주저하고 고민했을 그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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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 골절로 걱정하고 있는데도 달래 주지는 않고 대수롭지 않으니 신경 쓰지 말라는 식으로 말해서 아들이 크게 서운해 한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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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은 상사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그의 귀를 툭툭 치거나 꿀밤을 때리고, 없는 자리에서는 욕을 해 댔다. 동료 직원들은 그가 말해도 대꾸 없이 모른 체하거나 회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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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이는 축사 일을 도와 드리며, 가끔 시간이 되면 119알바, 대리 운전, 편의점 아르바이트, 장례식장 시체 처리 등으로 적은 돈을 벌어 왔다.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지현이의 속도 모른 채 뚜렷한 직장 없이 빈둥거리는 것을 보고 '대학 나온 놈이 할 게 없어서 여기서 놀고 있냐'며 나무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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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조이너는 .. 프레임워크를 만들었다. 그의 프레임워크는 크게 3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자살 계획과 준비, 둘째는 자살 욕망(관념)이댜. 첫째와 둘째는 자살 증상의 두 가지 기본 요소이다. 셋째는 추가적인 위험 요소로서, 짐이 된다는 느낌, 낮은 소속감, 심각한 약물 남용, 또는 중대한 부정적 인생사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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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계획하고 실행을 앞둔 사람들은 인지 억제 현상을 경험한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자살 전에 유서를 작성할 만한 에너지와 사고 여유가 없다는 말이다. 자살을 결심할 때까지 경험한 정신적 소진과 갈등은 글을 작성할 만한 심리적 여유와 집중력을 모두 고갈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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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가 집에 있는 편지지, 눈에 띄는 흰 종이, 찢어진 달력 조각, 포스트잇, 신문지, 연습장, 벽지, 벽면 등에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