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책

프로파일러

자카르타 2016. 6. 9. 20:34





중년에 민간 프로파일러로 뛰어든 저자가 자신이 이 세계에 뛰어들게 된 계기와 그동안 다뤘던 사건들을 소개한 책이다. 

저자의 평온한 마을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저자는 자신에 집에 하숙하고 있는 남자를 의심했고,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를 무시하고 용의자는 아무런 수사도받지 않고 마을을 빠져나갔다. 피해자와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둔 어머니로서 저자는 살인범이 버젓이 활보하는 세상이 불안했고, 오랜 공황과 방황의 시간을 지낸 뒤에 스스로 프로파일러로 뛰어들게 되었다. 


지극히 평범한 여자이자 아내이고 엄마로서 지닌 폭넓은 경험은 피해자와 범인의 일상과 불운하게 맞닥뜨린 우연, 악의에 찬 의도를 구분하게 해주었고, 그녀가 프로파일러가 되기 전 병원에서 장애인들을 위해 수화통역사로 근무했었던 경험은 인간의 행태를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책 전체를 채우고 있는 그의 프로파일 기록엔, 그래서 비슷한 소재의 영화나 소설에서 보기 힘든 섬세한 결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이 한 천제 프로파일러의 영웅담을 장황하게 늘어논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기 실린 사례들이 모두 미해결이다. 저자가 일부러 그렇게 미해결만을 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민간 프로파일러라는 제약, 그리고 그 때문에 적게는 수 년에서 많게는 20여 년이 흐른 사건들만 맡게 된다는 점에서, 실제로 그녀가 해결한 사건은 얼마 되지 않을 것 같다. 이를테면 실패의 기록인 셈인데, 저자가 시종일관 주장하는 바도 그와 같다. 사법 기관의 경직성과 폐쇄성 그리고 지방 정부의 정치에 의해 번번이 협업이 좌절되고 있다는 얘기다. 아울러 저자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환상을 만들어 놓은 프로파일링의 한계도 명확히 한다. 어떤 현장을 보고 범인은 스포츠카를 타고 주말에는 리얼리티쇼를 즐겨보는 30대 중반의 백인, 이라는 식의 프로파일링은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그저 프로파일러가 하는 일은 용의자의 선택지를 줄여주고, 수사의 우선순위를 정리할 뿐이라고. 


읽으면서 재밌었던 점은, 미국도 마치 우리 '살인의 추억'에서 나온 것처럼 주먹구구식의 수사를 하는 곳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연쇄살인범들은 어찌나 그렇게 많은 건지. 저자는 미국의 사법체계에서 빠져나가는 연쇄 살인범을 잡기 위해서는 용의선상에 올랐던 정보가 사법기관 사이에서 공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권침해의 우려가 있지만 수사진끼리만 공유를 한다면 타당한 주장 같다. 영화에서 보는 범죄자 검색 시스템은 그저 영화 속의 일이며, 실제 FBI에서 쓰는 현 시스템도 엉망이라는 얘기도 재밌다.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미스터리 드라마 한 회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다. 지금 쓰고 있는 시나리오에도 많은 참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