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책

나나누나나

자카르타 2016. 6. 12. 19:15





2006년 독후감에는 '한 줄 한 줄 쥐어짜는 신음소리'라고 적었다. 책의 뒷면에 적힌, 다른 소설가의 평은 '악다구니'라고 했는데, 이번에 읽었을 때는 좀 다른 느낌이다. 그저 자기 생채기를 핥고 있는 신음이나 독기 어린 악다구니가 담긴 수기가 아니라 정말 제대로 빚어낸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김비 작가가 자아내는 이야기에 빠져들 때마다 이 작가의 이름 앞에 '트랜스젠더 작가'라는 수식어를 떼어내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06년도에 이 책을 냈으니, 그 다음에도 더 많은 책을 꾸준히 내고 있었더라면 좋겠다는 바람도 들었다. 책을 읽고 검색을 해보니 역시나! 2007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그 이후에도 꾸준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있단다. 반가웠고, 빨리 만나고 싶었다. 


수기를 뛰어넘는다, 고는 했지만 성소수자에 대해서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은 이들이 읽어도 좋겠다. 그렇다고 동성애에 물들까봐 걱정하지는 말고. 이 책은 마냥 성소수자들의 편에 서있지 않는다. '편에 선다'는 표현도 우습기는 하지. 이 책은 그저 우리가 익숙한 삶과 사랑의 양식에서 볼 때 '다른' 삶들을 그리고 있다. 거기엔 몇몇 성소수자 혐오자들이 자신들의 근거로 삼는 이야기들도 나온다. 심지어는 '나 이제 게이 그만 할래'라고 선언하며 탈동성애를 선언하는 캐릭터도 있으니까. 동성애 치유 운운하는 이들은 반길만한 이야기일 게다. 작가는 이런 군상들을 그저 눈요깃거리로 흩뜨려 놓는 것이 아니라 섬세하게 짝을 짓는다. 마치 보색 대비를 만들듯이. 그 대비의 간극을 집요하게 헤집어서 작가가 만들고자 하는 것은 커다란 공백이다. 공감이 자랄 수 있는. 


이 책의 제목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장 뛰어난 단편인 '눈썹달'에 나오는, 평생 여성을 감추고만 살았던 시아버지와 이봉걸을 닮은 절름발이 며느리, '그의 나이 예순넷'에 나오는, 30여년 전 버림 받았던 육순의 노인과 그때 사랑을 버렸으나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 돌아온 노인, '토마토가 떨어진다'의 강간 당한 트랜스젠더와 그녀를 강간한 이웃집 남자(정확히는 시신),  '입술나무'의 빨간 치마를 버리지 못하는 아빠와 어디서 데려왔는지 모르지만 이젠 끊을 수 없는 혈육이 된 딸 등.... 이들이 감정이 얽힐수록 성소수자와 헤테로의 구별은 의미없어진다. 다만 누구에게는 뻔하게 울궈먹는 삶과 인생과 사랑에 대한 레토릭이 지독하게 갈망의 대상이었던 이들이 우리 곁에 있음을 실증하고 있다. 


이 작품의 형식도 대단하다. 문학에 그리 밝지 않아서 이런 형식이 어떤 위상을 가진지는 모르겠지만 매 작품마다 그 주제와 소재에 적절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것이 정말 '이야기꾼'이지 싶다. 특히 '눈썹달'에서는 이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도 좋을 것만 같다. 대중 취향은 아니어서 힘들까? 취재 겸해서 다시 들춰본 책이지만 예기치 않게 가슴으로 읽은 책이다. 십년이 지나 다시 읽은 후의 느낌도 새롭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