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살의 흔적
십년 전쯤에도 자료수집 차 법의학 관련 책들을 살펴본 적이 있는데, 그 사이 이분야 책들이 꽤 많이 늘었다. 번역서 위주였으나 이제는 국내 법의학자들이 많아진 덕인지 국내 사례를 담은 책들도 여럿이다. 오히려 번역서들이 8, 90년대 사례를 다루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 책들은 2000년 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근래 우리 법의학의 쟁점들, 수준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 책 <타살의 흔적>은 훈련하다 공포탄을 맞고 죽은 예비군 사건부터 현대 정몽헌 사장 자살 사건, 자기색정사 등 언론에서 의심을 제기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타살과 자살, 사고사의 경계를 가른다.
목을 매는 의사(縊死)에 대해서도 일반인들의 편견을 지적한다. 통념과는 달리 무릎이 바닥에 닿은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벽에 기댄 상태에서도 가능하다고 한다. 목을 지속해서 조일 수 있도록 매듭을 매놓았다면. 사례를 읽다가 옛날 생각이 났다. 자대 배치 받은 지 딱 이 주가 된 날, 입대 동기가 화장실에서 목을 맸다. 나중에 용기를 내서 그 자리에 찾아갔다. 화장실 제일 끝 쪽, 유일하게 보일러 파이프가 돌출되어 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왜 하필 이곳에만 파이프가 있었을까? 파이프가 없었다면 그 친구가 살 수 있지 않을까? 야속한 운명을 떠올렸던 게 아니라 파이프 높이 때문이었다. 늘어진 끈의 길이를 생각하면 친구의 발은 변기 뚜껑에 닿고도 남을만한 높이였다. 아마 녀석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면 타살 의혹을 제기할 만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교대 때 내 옆 번호였던 그 친구는 자신은 맞고는 못산다며, 고참들에게 폭력을 당하면 죽어버리겠다는 말을 했었다. 그리고 친구는 신교대 20킬로 행군에서도 낙오를 한 평발이다. 그가 목을 맨 전날 그가 속한 8중대는 빗속에서 100킬로 행군을 하고 새벽에 돌아왔고, 정오 무렵에 얼차려를 하는 소리가 이층 우리 중대까지 들렸다. 얼마나 죽고 싶었으면 발을 뻗지도 않고 죽었을까? 그 저주에 가까운 집념이 무섭기까지 했었는데, 이제야 친구의 마지막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게 됐다. 마지막까지 삶을 끊어내려고 이를 악물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해 악다구니를 쏟아내던 세상으로부터 조용히 벗어나려고 했던 거다. 어두운 화장실에서 희미해지는 의식을 붙잡고 얼마나 외로웠을까? 생의 끈이 끊어지려고 할 때 정작 목에 감긴 끈을 풀어내려고 했지만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을 때 무섭지는 않았을까?
그때 유족들에게 자세한 설명이 전해졌는지 모르겠다. 아마 무성의한 장교들에게 그런 것까지 기대하기는 무리일게다. 그날 밤 츄리닝 바람으로 대대장실에 불려갔을 때, 장교들 관심은 온통 자살 징후가 있었는지에 대해 쏠려 있었으니까. 이 책의 저자가 얘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직 우리 사회에 부검이란 두 번 죽이는 일 쯤으로 여기는 일이 다반사라지만, 부검을 통해 사망자의 사망 원인을 확실히 밝히는 것이야 말로 사망자를 위해서든 남은 사람을 위해서든, 또 사법 정의를 위해서든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주로 2천 년대 사건들을 다루면서도 소현세자나 선조의 죽음에 대해서도 저자의 의견을 밝힌다. 독살의 징후에 대해서도 이제껏 통념과 다른 새로운 사실을 전해준다. 짧게 단락 지은 수십 편의 사례들을 모아 놓은 글이라 쉽게 읽히는 점도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