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드라마

오자크

자카르타 2017. 7. 28. 22:34




늘 비슷한 리뷰만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회의가 들 때가 있다. 다른 포스터를 붙여도 상관없는 글들이지 않나. 휘발되는 감상의 껍데기만 붙잡은 박제가 아닌가. 이런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건, 뜻밖에 거장의 작품이 아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새 작품도 잔뜩 기대되고, 보고난 후에도 감동에 들떠있을 테지만, 그를 위한 준비된 찬사는 너무나 많다. 하지만 이렇게 느닷없이 넷플릭스에서 뒷통수를 맞을 땐 정말이지 내가 느끼는 감동, 감정의 갈피를 잡지 못한다. <오자크>도 그런 작품이다.

 

<오자크>는 참 이상한 작품이다. 스릴러의 얼개지만 위협이 되는 악당은 1회에 등장하고는 마지막 회가 돼서야 얼굴을 내민다. 그 사이 다른 악당이 나와 균형을 이루기는 하지만, 시청자를 몰입하게 하는 건 그 악당의 외력이 아니라, 주인공의 내면에서 나오는 힘들이다. 수백만 달러를 돈 세탁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를 비난하기는커녕, 주인공에게 공감하게 되는 것은 왜일까? 궁지에 몰린 남편을 나몰라라 하고 내연남과 도주하려던 아내와 아빠를 사지에 몰수도 있는 실수를 저지르는 아이들에 대한 남편의 가족애 때문이라고 하기엔 뭔가 어색하다.

 

매순간 가족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선택하지만, 가족을 갈라놓은 균열은 쉽게 아물지 않는다. 작가는 고난으로 봉합되는 가족의 서사에는 고개를 젓는다. 오히려 생사가 엇갈린 와중에도 상처를 헤집으면서 너희가 사는 것은 그저 관성이 아니냐 묻는다. 맞다. 가족을 살리기 위한 일이, 그가 가족을 위험에 빠지게 한 일이라는 아이러니가, 우리 삶에 대한 통찰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 삶이라는 게 똑같은 관성에 매번 다른 이름을 붙여주는 것뿐이지 않나? 내 관성어린 글에도 나는 매번 다른 이름을 붙여주듯이.

 

사족. 구글 플러그인을 설치하고 2배속으로 보는데, 좋은 작품은 그래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