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쇳물 쓰지 마라
인터넷 기사에 시로 댓글을 단 제페토의 시를 모았다. 시와 시인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세상에 발붙인 시인은 어떤 시를 쓸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시편들. 현실에 공명하고 위로하는 시가 얼마나 울림이 있는지 절감한다.
시를 쓰는 시각 장애인에 대한 기사에 시인은 묻는다. '만져지는 시란 / 어떤 느낌입니까' 점자로 쓴 시를 이야기하지만 통각을 가진 그의 시야 말로 만져지는 시가 아닐까.
키스를 안 해줬다고 총기를 난사한 할머니의 만행(?)엔 '노년을 아프게 하는 것은 / 새벽 뜬눈으로 지새우게 하는 / 관절염이 아니라 / 어쩌면 / 미처 늙지 못한 마음이리라'라며 노래한다. 문학이란 별종들의 실낱같은 욕망의 지류를 확대경 끼고 들여다 보며 거기서 보편성을 끌어내는 것이 아닐까.
책의 제목이기도 한 '그 쇳물 쓰지 마라'는 당진 제철소에서 쇳물을 뒤집어 쓰고 죽은 20대 청년을 애도한 시다. '광염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 그 쇳물 쓰지 마라. /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 /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 ... (중략) / 그 쇳물 쓰지 말고 /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 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 /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 정성으로 다듬어 / 정문 앞에 세워주게. / 가끔 엄마 찾아와 /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열사도 투사도 아닌 그의 동상이 설마 세워지지는 않았겠지만 시인은 이렇게 글줄로나마 그의 동상을 세워놓는다.
한파 속 폐지를 줍는 노인에 대한 기사에는 '(생략) / 장차 자신의 장례비를 외투에 넣고 돌아선 그는 / 곤궁한 처지를 푸념하는 대신 / 그깟 외로움 하나 견디지 못한 / 아들놈의 죽음을 나무랐다 / 그러고는 생각했다 / 어째서 사람은 부활하지 않는가, 하고' 썼다. 행정이 부양의무를 들먹이며 가난을 무시할 핑계를 주어모을 때 시인은 부양의 공백을 상상한다. 그리고 대를 물린 가난의 사슬을 훑어내린다.
용인서 건물 외벽 유리창 청소하던 40대 인부가 추락해 죽었다. 시인과 동년배였을까? 그는 노래한다. '그놈의 동네는 / 가지 성한 나무 한 그루 없더냐 / ... (중략) / 하필 당신 나와 같은 나이냐 / 전깃줄에라도 매달렸어야지 / ... (중략) / 귓불 스쳐 날던 나비에라도 매달리지 / 이번 추석은 글렀다 / 음복하다 울게 생겼다' 라고 썼다.
모피 옷으로 쓰이느라 죽임을 당하는 동물들 기사에는 '... (전략) / 가망 없는 현실은 공포보다는 당황스러움인데' 라며 산채로 껍질이 벗겨진 동물들에게 빙의한다. '만약 바람 한 점 없는 거리에서 / 나 펄럭이거든 / 산 채로 가죽 벗겨진 기억 떠올라 / 몸서리ㄴ치 것이거니 / 증오 때문이거니'
시 하나하나가 절창이다. 그 표현에 눈시울이 뜨거운 건 모니터의 명멸하는 빛으로 사라지는 존재에 가닿으려고 하는 시인의 몸부림이 처절하고 치열했기 때문이리라. 공명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고 무심하게 업보를 쌓아가는 내게 죽비 같은, 보듬는 손길 같은 시들이다. 정말 오랜 만에 시를 읽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