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창조 계급
지난 해 서울시정개발 연구원의 연구 용역을 하던 중에 참고하려고 산 책을 이제야 읽었다.
이 책은 서문에도 써있지만 리처드 플로리다의 전작 '창조 계급의 부상'을 쓴 이후 맞딱뜨린 비판들과 질문들을 염두한 보충 설명에 해당한다.
232페이지, 3부 9장 중에서 마지막 3부의 세 장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플로리다 자신이 주장하는 창조인력과 3T의 상관관계를 증명하는 데에 할애하고 있다.
플로리다의 3T는 기술(Technology), 인재(Talent), 관용(Tolerance)이 창조 경제와 유력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주장하면서 이를 뒷받침할 근거들을 열거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관용부분에서 보헤미안 지수나 게이지수를 다양성을 보장하는 관용의 척도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생인권조례에 반대하는 기독교 일부 단체들이 학내 동성연애를 부추겨서는 안된다며 반대를 하고 있다.
인권조례가 실제 동성연애를 부추기고 있는지 여부는 당장 조례만 들춰보면 아는 얘기지만, 성경의 일부 구절에 근거해서 동성애를 정죄하는 이들에게는 플로리다의 주장은 사탄에 미혹된 망언 정도로 여길지 모른다. 다양성과 이를 촉진할 근거로 사회의 관용을 강조하는 것은 상당히 바람직한 주장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미씸쩍었던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 책이 상당부분 공을 들이고 있는 통계와 분석 부분이다. 통계에 대해서는 무지한 탓에 정확히 이해를 하지는 못했지만 지수를 발굴해서 통계를 분석하는 것이 얼마나 객관을 유지할 수 있는가 여부이다. 그리고 당시의 통계가 드러내는 양태가 인과관계의 어떤 양상을 드러내는지도 실은 자의의 해석에 따른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관용이 창조 경제와 양의 함수 관계가 없다면 혹은 관용으로 인해 창조 경제가 저해된다면, 즉 오히려 통일성과 단일성 등이 창조 경제를 견인하는 원동력이라면 우리는 소수자를 반대할 근거를 얻는 것일까?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진보에서건 보수에서건 이런 시각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주장하는 것의 근거를 생산력, 효율성과 연계하려는 시각. 유용하지 않은 어떤 것도 그 존재의 가치를 잃어버릴 것 같은 강박.
그렇기 때문에 강정을 지키자는 논의의 한 축에서는 강정이 얼마나 희귀한지, 인간은 얼마나 유한한지에 대한 끝없는 논쟁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나는 플로리다의 주장이 우리 한국사회에서 더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종교나 전통, 권력에서 맹신이 최소한의 합리마저 무너뜨리는 지금, 현재의 싸움이 보수와 진보의 싸움도 아니고, 그저 합리 대 부조리의 싸움이라는 걸 알려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통계 분석이 대부분이어서 상당히 지루한 책이다. 혹 관심 있는 사람들은 서론과 3부 7, 8, 9장만 읽어도 괜찮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