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 어긋나 있는 말들만, 기호들만 쏟아내고 있다. 그림자를 잃어버린 피터팬처럼 둘은 계속 어긋난다.
오래 전 미술원 입시 때가 떠오른다. 검은색, 하얀색 포스터 물감과 지우개 두 개만 주고 가운데 물병을 그리라는 게 시험이었다. 어릴 때 24색, 36색 색연필만 있으면 그림이 저절로 되는 것처럼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허나 정말 실력이 있는 사람은 검은색, 하얀색의 점 만으로도 탁월하게 그림을 만들어 낸다.
그때처럼 나도, 지금은 수많은 말들을 버려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단순하게 아주 단순하게 말의 이진법을 사용해야 할 때가 아닌가.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듯 다시 오른발, 왼발을 내디뎌야 하는 때가 아닌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아니면 지우고 다시 쓰고 그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