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상인
바사니오 / 좋아하지 않는 걸 모두가 죽이나?
샤일록 / 안 죽이고 싶은 걸 누가 미워합니까?
얼마 전 종영한 <추적자>에서 박근형이 연기한 서 회장의 대사다. 옛날 동네마다 하나씩 있던 미친년들은 때리고 꼬집고 별짓을 해도 꿈적을 하지 않다가도 머리에 꽂은 꽃을 건드리면 삵쾡이가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그런 꽃을 하나씩 꽂고 산다. 그게 자존심이다.
샤일록에게 안토니오의 살점은 그런 자존심이었을 것 같다. 유대인을 적대시하는 베니스에서 그가 안토니오의 살점 한 파운드를 베려하는 것은 그에게도 궁극에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도발이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을 테니까. 포셔의 재판으로 샤일록이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결과가 증명하듯 그는 상당한 위험을 무릅쓴 셈이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그의 비참한 패배다.
셰익스피어의 대본들을 읽으면서 당시 극장에서 공연할 때는 상상해본다. 유대인의 곤경으로 표현되는 이 반전에 관중들은 통쾌해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오히려 샤일록에게 일정 정도 연민이 간다. 그의 이름이 이 연극의 제목이 되는 것도 셰익스피어가 그런 감정을 가졌기 때문일까? 모르겠다. '안 죽이고 싶은 걸 누가 미워합니까?' 그의 생애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분노와 적개심을 - 공포도 잊고 표현할 수 있었던 순간이다. 이 작품을 오늘 다시 연출한다면 이 순간이 높은 하이라이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