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 -New Face of Fiction 01
"사람들이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은 기억과 후회 때문이다." (대충 기억으로 적은 건데, 이 책 안에 있는 글이다.)
여자들은 그런다지? '엄마처럼 살지 않을거야'라고 말하면서 엄마를 닮아간다고. 그건 남자들도 그런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더 심한지도... 오죽하면 아버지의 부재를 게이의 원인 배경으로 설명하던 때가 있었을까? 그것이 사회의 통념이든 실제 어떤 역학관계가 있든 남자들에게는 아버지란 존재는 자신의 미래를 드러내는 샘플 중의 아주 유력한 샘플이다. 이 책도 SF와 시간여행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아들과 아버지의 엇갈린 시간표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모두 지금 그렇게 아버지와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듯이.
책을 덮은 후에도 난 이 주인공이 실제로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한 건지, 아니면 주인공의 아버지가 얘기했듯이 시간여행이란 그저 개인의 심리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건지 분간이 안된다. 난 후자에 더 끌리는 편이지만 다른 독자들은 또 아닌가보다. 책을 읽으면서 팀 버튼의 영화 <빅 피쉬>가 떠올랐다. 허풍쟁이 아버지의 유품을 뒤적이면서 그 진위를 따지는 아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내 아버지도 생각이 났다.
우리 아버지는 평생 그야말로 '발명'을 한다며 살아온 분이다. 지난 번에는 오랜만에 생각이 나, 혹시나 하고 인터넷에 쳐봤더니 아버지 이름으로 특허가 7개 등록되어 있었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단칸방 한 켠을 가득 채운 커다란 상에 스탠드를 켜놓고 도면을, 밤새워 그리는 모습이다. 마치 이 소설의 아버지가 차고에 틀어박혀 타임 머신을 만들었던 것처럼 아버지는 스탠드에서 나온 홀로그램처럼 그 앞을 떠날 줄 몰랐다. 소설 속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들인 주인공은 예상치도 않게 아버지 인생의 정점이 상당히 야트막하다는 걸 경험하게 된다. 이 표현이 상당히 이공계다운 단어라 삭막하게 들리지만 멋진 표현이다.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개체. 추진력을 받고 공중으로 치솟을 때의 아찔함, 멀미는 어서 정상에 다다르고 싶게 만들지만, 또 우리 가슴 속에는 언제고 오르막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아버지의 정점은, 천정은 어땠을까? 우리 아버지도 상당히 얕았던 것 같다. 그 정점이 이제는 어떤 자취도 남기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빅 피쉬>의 아버지가 임종을 눈앞에 두고서도 헛소리를 계속하듯이 내 아버지도 치매에 걸린 이후에도 발명을 계속하고 있었다. 어떤 날은 아버지는 달력 뒷장을 뜯어서는 새로 개발한 '영구기관'을 내게 설명하셨고, 어떤 날은 동네에 있는 키스트 박사를 만나러 가야한다며 차를 부르라고 하셨다. 책의 주인공 아버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아버지는 내가 머리가 나빠 이해를 하지 못한다며 누군가 이 대박 아이템을 이해해 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이 소설의 아버지처럼 내 아버지도 자신의 타임머신을 타고 그 얕고 짧았던 인생의 정점을 무한 루핑시키고 있었던 셈이다. 지금은 모두 소설같고, 영화같은 이야기다.
간만에 오래 전 기억들을 되살릴 수 있었다. 누구나 이런, 아버지에 대한 애증은 갖고 있기 마련인가 보다. 그런 기억도 행복일 수 있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좋은 책, 썩 잘 쓴 책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자신의 과거로 여행할 수 있는 - 타임 리핑의 능력은 부러웠다. 이런 글을 쓰는 작가가 부러웠다는 얘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