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아마도 사진 찍은 순서를 봐서는 신라때 유물인 것 같다.
현재와 거의 비슷한 주사위를 보면서 역시 호모 루덴스구나 싶었다. 그 위에 보이는 작은 돌들은 바둑돌이다.
아래 두 개의 사진은 발해의 유물들이다.
발해의 유물들은 몇 점 없었지만 판타지 디자인에 좋은 자료가 될만한 가상의 동물들이 많이 보였다.
같이 간 김피디는 아마 중국의 영향이지 않겠냐고 했는데 아마 그럴지도.
아래는 유명한 주령구.
안압지에서 술잔을 돌리면서 주령구를 돌리고 벌칙을 주면서 놀았단다.
망조가 든 신라를 표현할 때 흔히 등장하는 장면이다.
임진왜란 무렵의 승자총통이다.
생각한 것보다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한 7, 80센티미터 정도?
총구도 십센티가 채 안될 듯 싶었다. 저런 유물들이 어떤 맥락도 없이 저렇게 전시되고 있는 게 안타까웠다.
충분히 저 승자총통과 함께 소개해야할 것들이 많은데 말이다.
총통의 계보도 그렇고, 총통의 발사 방식, 저기에 딸린 소도구들, 승자총통의 위력과 가치 등 아이들이 궁금해하고 재밌어할 것들이 많이 있는데 저렇게 배치되어 있으니 아이들은 그냥 쇳덩이구나 싶어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역사 유물 중에서 중요성에 비해 간과되고 있는 게 저 도량형 기구들인 것 같다.
실제 어떤 도량형을 썼으며 거기에 맞춰서 삶의 양식, 방식은 어떻게 설정이 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필요할 텐데.
가령 한 마지기는 장정 한 사람이 하루 동안 담당할 수 있는 넓이이며, 한 말은 한 마지기에 뿌릴 수 있는 씨앗의 양이라던가.
위는 세금을 걷는 관리(평시서) 의 신분증이란다.
일반 밥상.
조선의 명승지들을 차례차례 돌아보는 놀이판.
이건 승경도 놀이인 줄 알았는데, 악녀와 선녀의 대결을 담은 놀이판이란다.
'인현왕후가 궁궐에서 쫓겨나 사가에 머무는 동안 친정 여자아이의 교육용으로 손수 만든 놀이(설명문)'라고 한다.
바둑판.
지금 비싸다고 하는 원목 형태의 바둑판이 아니라 마치 밥상이나 책상에서 진화한 것 같은 모양이다.
풍수가들이 쓰는 나침반.
휴대용 해시계.
요즘으로 치면 손목시계랄까.
이쯤해서 슬슬 지쳐가고 백자와 청자들은 별반 감흥 없이 둘러봤다.
생각보다 소품들, 여러 모양을 본뜬 모형이 많았다.
위의 사진은 청동 거울을 거치대에 올려놓은 모습이다.
보통 청동거울을 교과서에서 다룰 때는 청동 거울의 뒷면의 문양을 보여주느라 실제 쓰였던 앞면을 보여주는 그림이 없었는데,
마침 저렇게 전시를 해 놓으니 이해가 잘 될 것 같다.
신약 성경에 보면 사도바울이 그런 얘길 한다.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에 나오는 얘기인데,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보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리니' 이 얘기에서 보면 이상하게도 '거울로 보는 것이 희미하다'라고 했다.
이때 썼던 거울이 바로 저런 청동거울처럼 금속면을 갈고 닦아서 반사시키는 형태였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때의 거울은 지금처럼 선명하게 대상을 반사시키지 못했을 게다. 모두 뽀샤시하게 예뻐보이지 않았을까?
허리띠. 차고만 있어도 절로 다이어트가 될 것 같은.
이건 인도의 무기 모양을 본뜬 밀교의 수행도구란다.
보기에도 그냥 무기답다.
3층은 저렇게 도자기, 금속공예, 불상들을 따로 전시해 놓고 있다.
기대치 않은 유산들을 만나기도 했고 나름 재밌게 보기도 했지만 좀 더 우리 유물을 설명하고 제시해주는 다른 방식이 필요한 듯 싶다.
중요한 것은 맥락이 아닐까, 경주 남산과 불상을 따로 떼어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일상 생활과 유리된 유물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이러한 사라진 맥락들을 재구성하는 것이 유물의 가치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길일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