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20130925

자카르타 2013. 9. 25. 23:14


안쓰는 물건들, 언젠간 보겠지, 봐야지, 필요하겠지 하며 놓지 못하고 있었던 물건들을 하나 둘 정리하는 중이다. 

오늘은 <각설탕>, <로망스>, <그놈은 멋있었다>의 촬영 클립들을 저장해 놓은 DVD 수십 장을 버렸다. 


언젠가 편집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가르쳐 줄 일이 있으면 교재 삼아 쓰려고 했던 것들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지가 벌써 어떤 영화는 10년이 다 돼간다. 버리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를 설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누군가를 가르칠 기회가 있을까? 편집 전공도 아니고. 그리고 뭐 대단한 영화라고 그걸 교재로 쓰나? 정작 그 클립들을 저장해 놓고 있어야 하는 건 편집자나 감독 아냐? 


어떤 반론도 하지 못하고 버렸다. 아마 내가 가지고 있는 짐들의 상당수도 그렇게 취약한 욕망을 근거로 삼고 있을 게다. 그러나 예외인 것이 있다. 학교 때 찍은 16mm필름들. 이건 차마 버리지 못하겠다. 아직은, 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과감하게 이 필름들을 버릴 수 있는 날이 올까?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필름들이지만 한 때 내 고민들, 열정들이, 부끄러움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들이다. 이제는 이걸 어디서 틀어서 볼 수도, 지금 상태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 서로 달라붙어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냥 저대로 비닐 봉투에 담겨 종이상자 안에, 필름 캔에 담겨 있다. 


차마 버릴 수 있는 것들을 수술하듯이 잘라내지는 말고 우선 버릴 수 있는 것들만 홀가분하게 꾸준하게 버리려고 한다. 우선 아날로그 테잎들. 틈틈히 디지털로 옮기고 버리려고 하는데, 그것조차 욕심일런지. 정말 버리게 되는 건 오늘 처럼 그냥 과감하게 버리게 되는 것인지. 좀 더 가볍게 살려면 과감한 용기가 필요하다.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0930  (0) 2013.09.30
20130926  (0) 2013.09.26
20130924  (0) 2013.09.25
20130923  (0) 2013.09.23
20130922  (0) 2013.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