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책

중국과학의 사상

자카르타 2014. 1. 13. 21:15


중국과학의 사상

저자
박성래 지음
출판사
전파과학사 | 1978-07-01 출간
카테고리
과학
책소개
서양보다 앞서 과학ㆍ기술이 찬란한 꽃을 피우고서도 동양에서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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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니덤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보면 중국은 서양보다 수백 년은 더 빨리 '과학'이라는 것을 이뤘어야 했다. 하지만 1839년 아편전쟁으로 서양 과학의 힘에 무릎을 꿇을 때까지도 중국은 과학에 대한 관심조차 없었다. 그 이유는 뭘까? 이 질문에 대해 여러 석학들의 답을 모은 책이다. 중국 철학에 대한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풍우란과 호적, 중국의 과학을 서양에 소개한 조지프 니덤 그리고 한국 과학사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는 박성래와 조지프 레벤슨이란 사람의 글을 박성래가 엮은 책이다.  

먼저 풍우란은 중국의 사상을 묵가의 '인위' 도가의 '무위'와 공가의 '중용'의 대립으로 설명한다. 이중 서양의 과학과 비슷한 사고체계와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당연히 묵가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가 저물면서 묵가가 먼저 소멸되고 이후 중국의 역사는  유불도의 긴장속에 진행된다고 설명한다. 10세기 송학이 나오면서 유불도는 유교로 통합되게 된다고 한다. 공가의 유교가 우위에 놓이면서 중국 사상체계에서 과학의 수용체가 사라져 버렸다는 게 풍우란의 설명이다. 그러나 풍우란은 그것을 도태나 퇴보로 보지 않는다. 

송학의 리더였던 주희는 예기에서 <대학>과 <중용>을 뽑아 새로운 사상체계를 이루는데 대학에 나오는 8조목의 시작이 '격물치지'다 '대상에 접근하여 지식에 이른다'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언뜻 보면 과학의 탐구 자세와 비슷하다. 그러나 송학의 철학자들은 이때의 '물'을 자연만물로 규정하지 않고 그 자연만물을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내면이나 선대의 '고전(경전)'으로 제한했다는 것이다. 즉 중국의 사상은 object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subject에서 시작한 사상이기 때문에 과학이 필요치 않았다는 것이다. 

호적은 약간 다른 자세를 취한다. 이들 송학의 철학자들의 태도가 과학의 합리주의(저자는 이를 '소크라테스적 전통'이라고 한다.)라고 규정하면서 중국에도 과학 발전의 토대가 자리잡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단, 과학이 발전하기까지의 과정이 무르익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근대에 들어 중국이 과학을 수월하게 수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대해 박성래는 호적의 주장보다는 풍우란의 의견에 기운다. 호적의 말대로라면 여전히 '그럼에도' 왜 중국은 '과학적'인 것에서 '과학'으로 나아가지 못했는지, 적어도 더디 나아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박성래는 호적과 풍우란의 태도는 단지 각 주장이 이뤄진 시차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풍우란은 중국 전반의 개조를 주장했던 1930년대 이 주장을 한 것임에 비해, 호적은 50년대 이후 해방되고 근대화의 기치를 막 올리고 있는 시기에 이 논문을 작성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상체계로 설명하려고 했던 두 철학자와는 달리 조지프 니덤은 사회구조와 물토대를 살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결론에 따르면 중국은 서양과는 달리 '관료적 봉건제'였기 때문에 기술과 자본을 축적하려는 상인 계층이나 다른 계층이 부각될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니덤 스스로도 '관료적 봉건제'라는 용어가 학계의 인정을 받은 용어가 아님을 인정하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주장을 펴지만-이 책이 70년대 후반에 나왔고 현재는 중국의 봉건제가 서양과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상식이고 보면-시대를 앞선 주장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조지프 레벤슨은 청나라 때 발전한 이학, 심학에 대한 반발이 관념론에 대한 저항이긴 하지만 서양의 과학을 견인한 경험론에는 이르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박성래의 중국 선교사들의 활동기-특히 마테오 리치의 행적에 관한 것은 꽤 재미있다. 

지금 쓰는 글이 조선시대의 과학에 관한 글이라 전반의 맥락을 알아보기 위해 시작한 책이다. 이 책을 보면서 어떤 답을 얻었다기 보다는 좀더 폭 넓게 그 시대의 사상과 생활상을 파악해야겠다는 필요를 확실하게 느끼게 해준다. 70년대 말에 나온 책이라 철지난 말투들, 한자어가 읽기 불편하게 한다. 개정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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