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기 전에는 그런 생각을 했다. 박찬욱의 <올드보이>가 너무 좋았던 거다. 스파이크 리 이름값이 있지, 만약에 박찬욱의 올드보이가 없었더라면 스파이크 리의 <올드보이>도 꽤 좋은 평을 받았을 거다. 영화를 보고 나니,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스파이크 리는 박찬욱의 <올드보이>를 원작으로 보지 않은 게 틀림 없다. 박찬욱 버전을 원작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라고 보고, 자신의 해석을 추구한 것이 틀림 없다. 그러지 않고서야 원작이 가진 매력들을 이렇게 철저히 무시하면서 평작 이하의 작품을 만들리가 없다.
주인공이 그의 딸과 정사를 벌이는 것이 영화에 왜 나와야 하는지 스스로 납득이 잘 안갔던 모양이다. 감독은 악역의 입을 빌어 그런 설정을 가져오게 한 이유를 구구절절이 설명하게 한다. 그러나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박찬욱의 원작에서 오대수의 사소한 잘못 때문에 발생한 파국이 주는 비극은,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다. 그저 이상성애자의 망상에 의해 주인공이 피해를 본다는 느낌 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전까지 박찬욱의 정제된 형식미가 상당히 답답하고 심지어는 고루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스파이크의 작품을 보면서, 적어도 <올드보이>에서만큼은 그 정제된 형식미가 얼마나 적절한 연출이었는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유모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 박찬욱의 작품에는 유머가 잦다. 그 유머를 통해서 박찬욱은 비록 '비극'의 삶이지만 그것이 '삶'으로 느껴지게 한다. 그러나 스파이크 리의 작품에서는 도무지 그런 삶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박찬욱의 작품보다 더 적나라한 정사씬을 만들었지만 별다른 감정을 자아내지 못하고 눈요기에만 그치게 된다. 박찬욱의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스스로 혀를 자르게 되는 격한 감정이 자연스레 이어지는 반면, 스파이크 리의 결말에서 그다지 센 행동이 없음에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다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