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자카르타 2014. 3. 29. 20:55


(2010)

Poetry 
9.1
감독
이창동
출연
윤정희, 김자영, 이다윗, 김희라, 안내상
정보
드라마 | 한국 | 139 분 | 201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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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게을러져서 아침에 쓰던 모닝페이지도 못 쓰고 산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뜬금없이 시를 쓰고 싶다는 마음도 든다. 시를 처음 써 본 건 아마 초등학교 어느 무렵이겠는데 그거야 그냥 수업 중에 하라고 해서 쓴 거고, 기억에 남는 건 3학년 땐가 황지우 선생님 수업을 들었을 때다. 지금은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극작가, 소설가들이 함께 수업을 들었는데 그들의 시를 보면서 역시 차원이 다르다는 건 절감했지만 그래도 나름 시를 쓰는 재미는 느꼈던 것 같다. 


그때 그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였을까? 가끔 시를 쓰려고 해보지만 좀처럼 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시 강좌를 듣는 학생들처럼, 내 나름 절절한 과거도 있고, 발끝만 바라보는 현재도 이야기 거리가 되긴 하겠지만 그래도 시가 되어 나오질 않는다. 뭔가 가슴으로 절절하게 느끼는 것이 없어서 그런가 싶었는데, 그게 맞다고 한다. 이 영화가. 


영화 속 미자의 행보는 종잡을 수 없다. 두시간 반에 가까운 러닝타임 중 3분의 2가 지나도록 어떤 플롯도 예상치 못하게, 미자는 그저 발길 닿는 대로 흘러가는 것만 같다. 하지만 영화가 끝이 나고 그의 시가 완성되어 나레이션으로 흐를 때면 그의 여정이 이 시를 짓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미자가 강물에 뛰어들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그가 다리 위에 올랐을 때 그리고 모자가 떨어졌을 때 이미 소녀의 마음과 공명한 것이 아니었을까? 영화가 모두 끝이 나고서야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겪었던 일들이 하나로 엮이면서 의미를 만들어 낸다. 과거가 현재의 원인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가 매 순간 한 인물의 내면에 공존하고 있었다는 성찰을 주는 것은 <박하사탕>을 봤을 때의 경험과 비슷하다. 


학교에서 교탁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학생들을 가리키는 이창동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뭐 저렇게 작가연 하나 그런 생각도 들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수긍이 간다. 충분히 그럴만 하다. 주제의 깊이 만이 아니라 그걸 엮어내는 플롯도 어느 다른 감독에게서 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만약에 미자가 이희라에게 몸을 주는 장면 바로 뒤에 돈을 달라는 장면이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의미가 상당히 달라졌겠다. 강변에서 비를 맞은 미자가 노인에게 몸을 허락한 것은 손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마도 어린 소녀의 마음에 공감하기 위해서였으리라. 


노인에게 합의금을 빼앗아 소녀의 부모에게 전달했던 것은, 치매 때문이지만 미자가 소녀의 엄마에게 저지른 실수 때문일 것이다. 소녀의 엄마를 찾아가는 장면 바로 뒤에 이어지는 시 낭독회와 술자리 그리고 경찰과 단둘이 남겨진 씬은 그런 죄책감과 연결되는 장면들이다. 식탁에 소녀의 사진을 올려놓는 것도. 이때만해도 미자는 합의금을 마련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이미 그 앞에 경찰과의 씬에서 모두 얘기했으리라. 


윤정희와 이희라, 두 분의 연기도 너무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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