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란 말은 노환이란 말과 비슷하다. 노인들의 갖가지 질병을 무성의하게 싸잡아 노환이라고 하는 순간 별다른 치료법도 없고 그냥 견뎌야 하는 것이 되고 만다. 사이코패스도 그런 것 같다. 어느 연쇄살인범을 사이코패스라고 했을 때 그가 어떻게 그런 범죄자가 되었는지,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물을 여지가 없어진다. 그런 면에서 사이코패스는 현상을 맴도는 동어반복이거나 사회의 변명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기시 유스케의 <검은집>이나 <악의 교전> 역시 살인에 대한 원인을 다루지 않는다. (원작은 어떤지 몰라 책을 주문해 놓긴 했는데) 영화에서 다루는 것은 감정 없이 그저 '시체를 시체 속에 감추기 위해' 시체를 만들어내는 살인범에 관한 얘기다.
<검은 집> 보다 더 섬뜩한 것은, <검은 집>의 경우 사이코패스가 대중들과 유리된 삶을 살고 있지만 <악의 교전>에서는 학교에서 자신의 왕국을 만들고 살아간다는 점이다. 동료 교사나 학생들에게 애칭으로 불리는 교사가 사이코패스라는 설정은 성공한 사회 지도층 중에 사이코패스가 꽤 있다는 연구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처럼 극단의 상황까지 이르는 경우는 거의 없겠지만 공감 없이 그저 공식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테크노크라시도 실은 사이코패스로 분류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후반 참혹한 학살 씬은 보는 내내 불편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