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진리를 밝혀줄 수 있을 거라 확신하는 마틴(일라이저 우드)은 연쇄살인의 범인도 논리로 찾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반면 이미 연쇄살인과 수열을 비교하는 논문을 냈던 셀덤(존 허트) 교수는 마틴의 기대를 순진한 청년의 이상이라 여긴다. '수열의 다음 항은 그 무엇이든 올 수 있다고. 다만 수식이 복잡해질 뿐이지.'
인생이 수열처럼 수식을 발견하는 순간 다음 항을 예측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굳이 셀덤처럼 불확정성의 원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생 살아봐라. 그렇게 생각대로 뜻대로 되나' 싶은 마음인데. 이야기는 마틴의 기대대로 흘러간다.
살인 예고장과 거기에 그려진 기호들이 마틴과 셀덤 그리고 관객은 수열 방정식 찾기로 빠져들게 만든다. 살인 예고와 단서로 주어진 기호라는 설정이 진부하긴 하지만,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익숙한 패턴이기도 하고 마틴과 셀덤이 벌이는 티키타카가 이를 눈감게 만든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 무심하게 이 관습을 용인했던 관객의 허를 찌른다.
영화의 반전은 '우연'에 기대는 면이 크다. 그럼에도 수용하게 되는 것은 셀덤이 주구장창 얘기했던 바이기 때문이다. 인생에 정답이 어딨어? 다 우연이지. 진범조차 사건이 어떻게 흘러갈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오만한 스스로를 벌하게 만드는 상황. 그것이 실제 인생이지 않냐고 묻는 데에는 뭐 달리 토를 달 수가 없다.
예언을 실현하는 것은 그것을 예언이라고 믿는 이들의 믿음 때문이라는 사실도 이 영화가 반전을 만드는 핵심이다. 그 믿음이 우연을 필연으로 부조리를 논리로 만들기도 한다. 마틴이 처음에 무심히 벌인 날갯짓이 허리케인을 불러왔음을 알게 되는 순간의 카타르시스도 적잖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