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책

천년 동안에

자카르타 2012. 5. 1. 22:38



천년 동안에 2

저자
마루야마 겐지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1999-05-17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90년대의 현재와 지난 천년,2020년대 중반까지의 미래를 중충...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리뷰를 쓰려고 검색해 봤더니 이 책이 새 판으로 나왔단다. 사진의 책은 99년에 출간된 버전이다. 이번에 읽은 책도 99년판이다. 

마루야마 겐지는 소설보다는 그의 자전 에세이부터 읽었다. '부터 읽었다'라고 하니 마치 겐지의 작품을 다 섭렵한 것 같은데, 실은 에세이 '소설가의 각오' 읽고 한참 지난 후에 우연히 만나게 된 게 이 책 '천년 동안에'다. 그를 기억하게 된 것이 누구 추천인지도 잊어버렸다. 힘 있는 단문이 뛰어나고, 본격 작가가 되기 전에 '백경' 하나만 달랑 읽었더라는 작가 이력이 특이했다. 그 이력으로 만나기 시작했으니, '소설가의 각오'에서 내가 본 겐지는 꼬장꼬장한 장인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대중이 뭐라하든 그와는 상관없이 자기 기준에 완벽한 작품을 갈고 또 갈아 내는 장인이랄까? 


두 번째 만난 이 작품 '천년 동안에'에서 겐지는 예언가의 풍모를 비췬다. 천년을 산 '싸움나무'의 시선을 빌어 지난 천년간 펼쳐진 군상들의 모습과 28년 뒤의 일본의 격동기를 유장하게 펼쳐낸다. 향후 펼쳐질 일본의 쇠락에 대한 예언에서 그의 말처럼 '물질보다 무거운 혼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인간에 대한 냉정하면서도 세심한 시선과 그로 인한 통찰력 덕분이다. 붙박이 나무와 흐르는 자의 대비를 통해서 겐지는 추락할 수 밖에 없는 문명과 거기에 반해 끊임없이 부력을 추구하는 정신 사이의 긴장을 묘사한다. 


세기말, 타락과 쇠망에 대한 트라우마는 일본 작가들에게서 심심찮게 보이는 소재이지만 겐지의 작품에서는 그 반복되는 트라우마의 윤회를 벗어나게 하는 힘이 느껴진다. 그것은 참 희안한 일이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도 알려주지 않는 불친절한 묘사에도 과하게 감정이 흔들리지 않으면서, 그를 묘사하고 추적하는 싸움나무와 같이 주인공의 궤적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참 자유'에 대한 작가의 탐구가 독자에게 공명을 일으켰기 때문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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