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012)
The Amazing Spider-Man
7.1
글쓴이 평점
특촬물이란 게 있다. 주로 일본에서 만든 건데 사람들이 로봇이나 괴물의 탈을 쓰고 나오는 영상물들을 말한다. 괴물들이 시가지에 나타나서 물을 뿜고 철도를 부수면 영웅 주인공이 나타나서 물리친다는 얘기들인데, 그때 배경이 되는 시가지들은 미니어처를 사용했다. 재밌는 건 이 괴수들의 크기가 오락가락 한다는 거다. 계곡이나 숲에서 싸움을 하면 뭐 잘 눈에 띄지 않는데, 도시로 들어오면 빌딩들과 금새 비교가 돼서 괴수의 크기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괴수들이 가끔 주택가로 들어가서 싸울 때가 있는데 이때도 2층, 3층 짜리 집이 이 괴수들의 종아리를 넘는 크기인 것이다. 수십층 빌딩이 허리춤에 닿았으면 일반 주택은 발목에도 못미쳐야 하는 거 아닌가? 분명히 논리상 설명이 되지 않는, 일관성이 없는 제작진의 오류지만 그 당시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보다는, 아이들끼리 침을 튀기며 싸우게 만들었던 것은 만화나 그런 특촬물에서 나오는 영웅들의 검증된 전투력이었다.
헐크는 도대체 몇 미터까지 점프를 할 수 있는걸까? 슈퍼맨이 들 수 있는 무게는? 배트맨의 갑옷이 견딜 수 있는 총은? 아이들은 서로 자신이 지지하는 영웅들이 얼마나 위대한지 갖가지 에피소드들을 증거로 내밀었지만 결코 승부는 나지 않았다. 이유는 너무나 당연하다.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악역들에 따라 매번 영웅들의 능력치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걸 보고 <시나리오 마스터>를 쓴 데이비드 하워드는 스토리 세계의 일관성이라고 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만화 영웅들의 세계에 일관성을 갖고 진행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듯 싶다. 당장 헐크만 봐도 한 영화에서 그의 덩치는 오락가락한다.
돌아온 스파이더맨의 감독도 비슷한 고민을 한 것이 틀림 없다. 아니 고민보다는 현실이 갖는 중력에 심하게 얽매여 있지는 않았나 싶다. 실은 그런 고민은 나도 했다. 스파이더맨의 전작들을 보면서 가장 걸렸던 것은 손에서 나오는 거미줄. 재료 걱정 없이 필요할 때면 얼마든지 쏙쏙 뽑아내는 그 능력이 참으로 편리하다, 완벽한 거미로구나.. 싶으면서도 저렇게 유전자가 변형이 되었으면, 나중에 커스틴과 결혼해서 애를 낳게 되면 혹... <더 플라이>의 주인공들 처럼 진짜 털달린 다리 8개를 달고나오는 거미를 낳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어메이징...>은 그 께름칙한 부분을 말끔히 정리를 해주긴 했지만 뭔가 허전함을 지울 수가 없다. 마치 날아다니는 꿈을 꾸다가 깬 것처럼.
나중에 개량 거미줄이 나오면 괜찮을까? 이번 거미줄은 왜 그리 신축성도 떨어지고 접착력도 부족한지 전작의 스파이더맨이 보여줬던 '겨드랑이가 간지러울 정도의 가벼움'은 도무지 볼 수가 없었다. 보는 내내 '쟤가 저러다 뇌진탕으로 죽지' 싶은 조마조마함은 연출의 의도일까? 주인공의 핸디캡보다는 악당을 좀 더 세게 만드는 게 추세라는 걸 과감하게 무시한 감독 탓에 스파이더맨을 좀 더 안쓰럽게 볼 수 있었지만, 그리고 스파이더맨의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1편부터 3편까지 오락가락하면서 종종 가진 의문이긴 하지만... 다음 번 감독은 그런 관객들의 의문일랑 일본의 특촬물 감독처럼 뻔뻔하게 무시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