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누굴 믿겠니?>
2012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 선정작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 12월 30일까지. 평일 8시, 토요일 3시, 6시, 일요일 3시.
우리가 누굴 믿겠니? 우리가 남이가? 우리 사회의 가장 강력한 안전망은 가족이다.
많이 배웠건 못 배웠건 간에 그 사실은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몸소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바라. 어른들이 결혼 안한 자식들을 향해 한숨을 내쉬는 것도 다 그 때문이고, 가족과 혈연에 대한 믿음과 의지는 거의 신화가 되어 있다. 그래서 아직도 가족 단위에서는 입양이, 국가 단위에서는 다문화인들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하다.
신재훈 작가 겸 연출이 극단 작은방 식구들과 만든 연극은 그 '가족'에 대해, 그 가족이 가진 집착과 맹목이 지옥을 만들어 갈 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연극은 한 가족의 상견례를 겸한 식사자리로 시작한다. 인사차 들른 며느리는 투박하지만 정겨운 시골 시댁식구들과 정을 붙이려고 하고 시아버지와 시아주버니는 그런 며느리를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 며느리는 처가에서 만든 음식들로 진수성찬을 벌였고, 가족들은 밥상에 모였다.
그러나 이들의 단란하고 평온한 밥상을 지탱한 살얼음은 이내 박살이 난다. 제자 자로의 육젓갈을 먹고 토한 공자가 떠오른다. 며느리는 잔뜩 싸온 음식을 넣을 곳을 찾다가 구석에 처박힌 김치 냉장고 속에서 죽은 동서의 시신을 발견한다. (스포일러라고 생각했는데 입장할 때 주는 브로슈어에도 써 있는 내용이라 그냥 쓴다.) 이후 이들은 죄와 구원 사이에서 헤매다가 결국 한 가지 봉합에 이르게 된다.
제목에서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그 봉합이란 게 대단한 반전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보다는 그 '봉합'에 이르는 지난하면서도 구차한 과정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건 이 시대가 마지막으로 가족 이데올로기를 지탱하는 변명이자 기만들의 쌩얼들이다. 그 민망한 쌩얼을, 바로 코앞에서 마주하게 하는 것이 이 연극이 관객에게 주는 가장 큰 카타르시스다.
대선이 끝났다. 실낱같은 기대도 그저 어이없이 사라졌다. 2008년에 누군가 예언한 2012년 대선 결과를 보니 핵심은 그저 '지역'이었다. 이제껏 1100만표가 승부를 가르는 득표수였고, 경상도 인구가 1000만이라는 것. 그래서 IMF에도 탄핵 역풍에도 한나라당이 40%에 육박하는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 이른바 '우리가 남이가' 정서. 연극을 보고 난 후 그 추레한 광경이 세상에 가득찬 것 같아 입이 썼다.
30일까지 쉬지도 않고 부지런히 공연한다. 관심 있는 분들 가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