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바람의사신

사랑의 플롯

자카르타 2013. 3. 22. 23:06



호창이 연구과제 때문에 플롯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문득 요즈음의 영화에도 '사랑의 플롯'이 있나, 싶었다. 

로널드 토비아스가 쓴 책에서 정의하는 사랑의 플롯에는 반드시 사랑을 훼방하는 '악역'이 있고, 옛날에는 그 악역은 연인의 부모였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그 악역을 신이 맡는다. 그리고 현대로 넘어오면, 가령 <졸업>과 같은 영화를 보면 그 역할을 여자의 부모가 맡되,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 


플롯이 그대로 장르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장르가 다른 플롯들을 차용할 수 있다. (아, 이 관계도 고찰한다면 좋겠다.) 그럼에도 둘의 의존도나 상관도가 깊은 것도 있다. 사랑의 플롯과 멜로 장르처럼. 하지만 요 근래의 멜로들은 더 이상 사랑의 플롯을 사용하지 않은 것 같다. 주인공 두 연인은 서로를 사랑하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역경을 헤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또 그들을 방해하는 외부의 악역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랑을 훼방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 자신이다. 외부의 악역보다는 내면의 자아가 이들의 사랑을 훼방하는 셈이다. 


최근에 본 <내 아내의 모든 것>이 그랬고 <사과>도 그랬다 하정우가 나오는 그 영화 -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도 그랬다. 이들 영화는 무엇이 사랑을 식게 만드는지, 사랑을 권태롭고 연인을 괴롭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를 집중 탐구하는 것 같다. 이런 변화가 얘기하는 것은 뭘까? 관객들이 이미 공유한 유일한 미션 '사랑의 성취'를 주인공들 스스로 붕괴해나가는 현상은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까? 어쩌면 오늘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솔직한 고백일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개인의 연애를 방해하는 것은 없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 낭만 넘치는 사랑은 이 시대의 가장 숭고하고도 불가침의 가치를 갖는다는 것. 오히려 사회가 형성한 가치와는 반대로 우리 사랑을 한 없이 가볍게 만들고 마는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라는 솔직한 회고가 반영된 것은 아닐지. 


그에 비하면 홍상수의 영화는 그 마저도 - 상대에 대해 손톱을 세운 그 적대 행위 마저도 이별을 위한 요식행위이자, 한 없이 가벼운 우리의 자위였음을 쿨하게 털어놓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 영화가 그렇게 우스우면서도 불편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앞으로 사랑과 멜로에 대한 서사는 그 언저리에 머물 것인가? 서로를 지난하게 상처주는 과정에 천착하거나 그를 비웃거나? 

이것이 지금 현상에 대한 솔직한 일면을 담고 있다면 또 다른 진실된 면들을 탐구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어떤 사랑을 하면서 살고 있나? 우리가 잊고 있었던, 서사가 아직 다루지 않았던 일말의 진실은 무엇인지 깊이 탐구해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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