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바람의사신

설정

자카르타 2012. 3. 26. 00:31

시나리오에서 설정은 게임의 룰과 같다. 그래서 시나리오 머리에는 이 설정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초기에 반드시 설명하고 들어가야 하는 것과 정보를 지연시켜야 할 것들은 어떻게 구분을 할 수 있을까? 


게임에 준해서 설정을 이해하자면 게임은 자신에게 주어진 미션과 자신이 가진 능력과 한계를 드러내는 일이다. 대략 이 정도면 게임에 참여하는 유저가 앞으로 전개될 갈등이나 플롯을 어느 정도 기대하면서 준비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주인공의 전사들나 트라우마는 설정에 속하는 것일까?  가령 주인공이 트라우마로 인해서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갈등을 일으킬 텐데, 그 트라우마를 야기한 과거의 설정을 미리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 

나중에 비슷한 시점에서 설명하는 것은 어떨까? 


플롯 차원에서 고려를 해보자. 

가령 모험의 플롯의 경우에는 도입부에서 미션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캐릭터라이징이 어느 정도 되어 있는 인물이라면 극이 진행되면서, 혹은 아주 새로운 인물이라면 초반에 그의 인물에 대해서, 인간 관계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설명이 필요하다. 여기서 한계 상황이라고 한다면 모험에 경쟁자로 설정된 악역(라이벌)이나, 앞으로 진행하게될 여행의 위험성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미스테리의 경우는 어떨까? 그 미스테리를 밝혀내는 것이 미션임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캐릭터의 트라우마와 같은 한계상황을 미리 다 설명을 해줘야 할까? 대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트라우마가 생성되는 모든 장면들을 세세하게 묘사할 필요도 없다. 이것은 나중에 감정선에 따라서 공유를 하면 되는 문제다. 관건은 그때까지 관객의 관심과 호기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다. 


플롯을 좀 더 고민해 보자. 

모험의 플롯을 여행의 플롯과 라이벌의 플롯과 겹쳐지는 부분을 어떻게 정의하고 정리하면 될까? 

지난 번 강의 때 라이벌의 플롯을 '두 세계관의 대립'이라고 정리했었다. 동어반복이겠지만, 이 용어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각각의 룰 - 대부분은 캐릭터로 반영이 되겠지만 주인공과 악역의 룰이 달라야 하고, 이것은 마치 두 부족의 신화와 제의가 다른 것처럼 달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자 했다. 라이벌의 플롯에서는 그러니, 목표는 중요하지 않다. 아니 사실 목표(미션)은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다. 거기에 다른 공동의 목표가 설정된다고 해도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극의 흥미를 이끄는 요소는 두 대립된 세력이 어떻게 첨예하게 박빙의 승부를 펼치는 가에 있다. 

모험의 플롯 역시 그 목표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파랑새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대부분의 목표는 성취되지 않아도 주인공의 성장을 통해 보상을 받는다. 통과의례, 자격의 조건을 얘기하고 있는 거라고도 볼 수 있을 텐데. 이런 원시부족의 이야기가 아직도 우리에게 통용될 수 있을까? 지금의 관객에게 모험의 플롯이란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 모험은 집을 떠나고 싶은 욕구, 그리고 돌아오고 싶은 욕구가 쌍으로 맞물린 것이 아닐까? 모험에서 만나는 세계는 환상의 세계고 그 세계는 관리되고 봉합되어야 하는 세계다. 그것을 완성하는 것은 집으로의 귀환이다.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가 내포하는 불안은 그런 봉합될 세계를 더 이상 닫아놓을 수도 열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언어와 논리로 통제되는 세상이 아닌 것이다. 그걸 봉합시키기 위한 노력이 '정죄'가 아닐까? 


플롯에 대해 정리를 하려는 것은 여러가지 플롯을 관통하는 표준 모델을 만들 수 있을 않을까 해서다. 표준 모델이라는 것은 또 다른 변용의 가능성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지금 20가지니 36가지니 하는 것은 그 변용을 그저 가짓수로만 늘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플롯이 가능하도록 하는 몇 가지 요소들이 분명 있다. 가령 주인공과 악역이라든가, 설정이라던가. 


라이벌의 플롯은 주인공과 악역의 대립이다. 그리고 다른 플롯과는 달리 주인공의 설정과 악역의 설정이 충돌하는 것이다. 설정이 두 개다. 

그 설정에서 두 세계는 거울과 같은 대칭을 이뤄야 한다. 장기판의 말처럼 똑같은 기능으로 나뉘던가? 아니면 정 반대 - 즉 한쪽의 강점이 다른 쪽의 약점이 되는 형식의 룰을 담보하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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