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파. 신파의 한자 뜻은 뉴웨이브다. 당시로서는 새로운 서사였던 셈.
이건 추측이지만, 개인의 감정을 그렇게 깊이 탐구하고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것은 근대 이전에는 상당히 낯선 방식이었을 게다. 신파가 다루는 자유연애, 가족 내 세대간의 갈등도 그런 '신파의 태도'의 연장선에서 자연스럽게 다루게 된 문제가 아니었을지. 물론 영화가 시대를 앞서갔다는 건 아니다. 시대의 변화를 영화가 카메라에 담으면서 사람들은 비로소 실감을 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늑대소년>을 신파라고 보는 건 우선은 폄하의 뉘앙스를 가진 기존 '신파'의 정의에 맞게 '눈물샘을 자극'하는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이건 관객 취향의 문제이지 결코 정답은 없다. 슬퍼야 할 장면에서 눈물 대신 헛웃음이 나오게 하는 영화도 많으니까. 영화는 '신파'답게 순이가 철수에게 정이 드는 과정을 알콩달콩 묘사하고, 또 순이에 대한 철수의 애완견 같은 순종과 사랑도 그렇게 표현한다. 일단 여기까지 쌓아 올린 관객들과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순이에 대한 철수의 헌신, 희생 등을 최루성 풍부하게 묘사한다.
야수인 철수를 길들이는 과정이 어이없을 만큼 순조롭게 진행되지만 의문을 제기하기 전에 철수와 순이를 연기한 두 배우의 디테일들이 감정을 쌓아올린다. 그야말로 박보영 같은 순이, 송중기 같은 철수기 때문에 가능한 서사라고 할 수 있다.
신파가 폄하의 뉘앙스를 띄게 된 것은 아무래도 그 소재의 반복과 표현의 진부함 때문일 게다. 인간의 심리를 묘사하겠다는 애초의 포부가 몇몇 혈액형 타입처럼 전형의 캐릭터, 표현의 클리쉐, 관계의 패턴들 속에 갇혔기 때문이 아닐까. 이 영화 <늑대소년>도 어찌보면 그런 익숙한 패턴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조금 다른 방식으로 그런 익숙한 패턴들을 비튼다. 캐릭터는 '미녀와 야수'와 같으면서도 주제는 오히려 사랑보다는 사랑의 퇴행적 차원인 '길들임'에 머물고 있다. (이 퇴행이 기존 서사와 다르게 보이는 매력이기도 하다. 역설이지만.) 사랑하는 연인과 이를 훼방하는 아버지 같은 존재 - 이 영화에서는 아버지의 자리를 재력으로 대신하는 지태가 그런 역할이다. - 도 최근의 연애 이야기의 경향 즉, 사랑의 훼방자는 연인 자신들이라는 이야기에서 다시 수십 년 전으로 퇴행한 상태를 그리고 있다. 결국 <늑대소년>이라는 신파가 갖춘 새로움은 우리가 어느새 잊고 있었던 과거의 설정들이다. 해아래 새 것이 없다지만 세월 속에 '진부'한 것도 없다는 걸 여실히 증명하는 셈이다. 유행은 돌고 도는 셈이랄까?
모든 인물들이 전형성을 보이고 있다. '전형성'이라는 말 역시 '폄하'의 뉘앙스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전형의 캐릭터란 말이 그런 경멸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얼마든지 감동을 줄 수 있고, 그 안에서도 살아 있는 연기를 보일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전형적인가?
전형의 캐릭터 속에서도 순이와 철수가 관객을 사로잡았던 것처럼 주목하게 되는 배우가 있다. 엄마의 역할을 한 장영남이다. 아마 다른 배우가 했더라면 개연성의 얘기가 나오고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지적과 함께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했을 서사들을, 장영남의 표정과 말투 호흡이 영화의 틈새를 메우고 대패질을 해 나간다.
<시퀀스 요약>
1. ~0:06:32
미국에 있는 순이에게 연락이 와, 순이(노인)는 한국 옛날에 살던 집으로 온다.
2. ~0:21:16
47년 전, 늑대소년을 사육하던 주인이 급사한다. 이 집으로 순이네가 이사를 온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구 아들이 집을 사줬다. 순이는 폐병으로 요양차 온 것. 순이는 우울한 맘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을 때 이상한 소리를 듣고 창고 안에 있는 늑대소년을 만난다. 엄마는 늑대소년을 받아들인다.
3. ~0:31:23
늑대소년을 다른 곳으로 보내려고 한다. 그 사이 잠시 동거를 하기로. 순이는 철수의 야생성에 적응하지 못한다. 어느날 아버지 친구 아들인 지태가 순이에게 추근덕 댈 때 철수가 순이를 지켜준다. 이 일로 순이는 철수를 길들일 생각을 하게 된다.
4. ~0:37:57
아이들과 노는 철수. 그의 괴력. 순이는 음식으로 길들이려고 한다. 순이의 피를 본 철수는 순이의 첫 명령 '기다려'를 익힌다.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보상 체계의 시작. 가족들 보는 데서 성공한다. 재미를 느낀 순이는 우울한 일기 대신 훈련서를 탐독한다. 철수에게 다양한 훈련을 시킨다. 철수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보상에 길들어 간다.
5. ~0:46:53
철수와 순이 가족의 장터 나들이. 여기서 철수의 괴력을 드러난다. 의원 에피소드.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노는 한 때. 저녁 밥상, 순이는 동생으로부터 고아원에 사는 아이의 환경에 대해 듣는다.
6. ~0:57:33
지태가 순이 이웃집의 염소를 치어 죽인다. 현장에서 철수가 이웃집 남자와 만난다. 순이는 철수에게 글을 가르치다가 노래를 들려준다. 고아원에서 전화가 오는데 철수를 감춘다. 순이와 철수가 화장하고 놀다 가족들에게 들킨다. 저녁, 더 친밀해진 두 사람. 하루가 저물고.
7. ~1:07:15
지태가 전날의 앙갚음을 하려고 밤에 무단 침입. 철수가 지태와 그 친구들을 응징. 지태의 신고로 경찰 출동. 철수가 파출소로 잡혀갔으나 경찰들의 권면으로 합의. 철수는 축사에서 생활하게 됨. 지태는 우편함에서 대학교 교수의 편지를 발견.
8. ~1:15:46
지태는 교수를 찾아간다. 한편 순이는 철수에게 눈사람 얘기를 들려줌. 밖으로 나와서 뛰어 놀던 순이가 쓰러지자 철수는 순이를 데리고 숲으로 감. 그 사이 군경들이 출동해서 이들을 쫓음. 결국 철수가 잡힘.
9. ~1:27:47
철수는 군경의 감시를 받음. 철수가 위험하다는 것이 입증되면 사살할 상황. 지태는 철수가 위험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웃집 남자의 염소를 철수가 죽였다고 함.
10. ~1:39:45
지태의 계략으로 철수가 누명을 씀. 철수가 사살당할 위기에 순이가 나섬. 지태가 순이에게 폭력을 휘두를 때 철수가 지태를 죽임. 순이와 함께 숲으로 도주.
11. ~1:46:26
숲에서 순이는 철수에게 도망치라고 함.
12. ~2:01:13
이사가는 순이네. 순이는 편지를 남기고 떠난다. 그리고 47년 후. 노인이 된 순이와 손녀는 하룻밤을 보낸다. 밤에 순이는 축사에서 철수를 만난다. 철수는 순이를 재워주며 동화책을 읽어준다.
13: ~2:05:57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