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영화에서 흔히 보던 프로페셔널은 없다.
써니(알 파치노)는 그의 친구 쌀과 함께 마감시간의 은행을 털러 들어간다. 그러나 그가 선물 상자에서 총을 뽑는 순간부터 뭔가 이상하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헛손질을 하는 써니를 보다 못해 은행원들이 침착하라고 써니를 다독인다. 그날 따라 마침 은행의 잔고가 텅텅비고, 여자 은행원들은 화장실을 가야겠다고, 금고엔 숨이 막혀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성화다. 겨우 남은 돈을 긁어 나가려고 하는데 경찰에 포위됐다는 연락을 받는다.
<뜨거운 오후>는 경찰과 대치중인 은행강도 인질범 써니와 쌀의 이야기다. 그러나 '내일을 향해 쏴라'처럼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이 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경찰이 부조리한 축으로 묘사되지도 않는다. 이 영화가 '실화'임을 표방했듯이, 딱부러지게 편을 들 수도 없는 현실의 모호한 경계 안의 풍경들을 그리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를 계속 보게 하는 힘은 단연 알 파치노가 연기한 써니라는 캐릭터다. 그는 이전이나 이후에 보였던 어느 캐릭터에서 볼 수 없는 허술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 허술함이 오히려 관객들을 끈끈하게 영화에 잡아맨다. 그 큰 눈을 보면 인질범이라기 보다도 그 스스로 인질이 된 것 같다. 맞다. 그는 영락없이 그물에 잡힌 노루다. 먹이를 탐하다 사냥꾼의 그물에 잡힌 노루.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그 노루의 백치미에 웃기도 하고 위기에 가슴졸이기도 한다.
감독인 시드니 루멧이 이 실화에서 어떤 주제를 말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계획과 음모와 반전으로 가득한 도시의 서사에 난 데 없이 뛰어든 노루처럼 순박한 캐릭터에 그 스스로 반했는지도 모르겠다. 제한된 한 공간에서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은 사건으로도 2시간을 끌어나가는 것을 보면 역시 <12명의 성난 사람들>을 연출한 감독의 역량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