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로마 위드 러브

자카르타 2014. 1. 1. 23:40


로마 위드 러브 (2013)

To Rome with Love 
8
감독
우디 앨런
출연
알렉 볼드윈, 엘렌 페이지, 제시 아이젠버그, 페넬로페 크루즈, 로베르토 베니니
정보
코미디, 로맨스/멜로 |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 111 분 | 201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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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여행으로 왔다가 이탈리아 남자와 사랑에 빠진 딸의 상견례를 위해 노 부부가 이탈리아를 방문한다. 퇴물 음악가인 여자의 아버지는 장차 사돈될 양반이 샤워부스에서 부르는 노래를 듣고는 그를 가수로 만들고 싶어 안달이 난다. 

둘, 로마에 정착하려고 막 도착한 신혼부부의 이야기. 신부는 머리를 하겠다고 나갔다가 길을 잃고 그 사이 번짓수를 잘못 찾은 콜걸이 신랑을 찾아온다. 신랑의 친척들이 둘의 실랑이를 목격하고 콜걸은 신부로 가장한다. 

셋, 성공한 건축가는 로마의 거리에서 과거 건축을 공부하던 자신을 만난다. 동거녀의 친구가 갑자기 찾아오고 동거녀의 우려처럼 청년은 친구와 사랑에 빠진다. 

넷, 평범한 어느 가장은 하룻밤에 유명인이 된다 곳곳마다 파파라치가 따라다니고 여자들이 들러붙는다. 그는 갑작스런 변화에 당황하고 다시 평화로운 일상을 염원한다. 


이 네가지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은 뭘까? 선뜻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재밌다. 많이 줄었어도 여전히 넘치는 대사들은 온전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각각의 에피소드가 평범한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첫번째에서 퇴물 음악가는 끝내 사돈을 샤워부스에서 노래하는 독특한 퍼포밍의 가수로 만들고 유명인으로 만들고 만다. 두번째 이야기에서 신혼부부들은 우연히 끼어든 일탈의 순간들을 경험하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그 사이에서 가장 큰 긴장을 만드는 것은 관객의 윤리다. 영화는 관객의 고정관념을 가뿐히 뛰어넘으면서 해피엔딩을 만들어 낸다. 세번째 이야기에서 청년이 잡았다고 생각하는 사랑은 가볍게 그의 품을 벗어난다. 그가 결심했던 새로운 삶에 대한 계획은 그저 없었던 일이 되고 만다. 네번째, 남자를 괴롭힌 유명세는 감기처럼 아무 이유 없이 어떤 처방도 없이 그냥 지나가고 만다. 그 역시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쓰고 보니 첫번째 이야기도 그 결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정말 샤워부스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탄생한 것일까? 아니면 음악가의 아내가 얘기했던 것처럼 '음악가는 죽어가고 사돈은 죽은 자를 기다리는 장의사고, 사돈의 죽은 자를 끄집어내는 - 결국은 그 스스로 살아나고자 하는' 욕망이 그런 환상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그렇게 본다면 이해가 간다. 우리의 일상에 스며든 상상의 순간들, 펼치지 못하고 접어버린 상상의 주름들을 가만히 펼쳐본 게 아닐까? 그 상상들이 우리를 다른 인생으로 이끌지는 못한다. 그러나 어떤이들은 그 추억을 더듬으며 골목을 헤메고 허망하게 사라진 환영들을 그리워하며 거리에서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그 설레임을 가슴에 안고 사랑을 시작하기도 하고, 옛 문명이 남긴 담벼락에 비치는 황혼을 응시하기도 한다. 

 

옴니버스의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또 이런 결말들의 영화는 더더욱 좋아하지 않지만 노장 감독의 상상력, 그리고 그 상상력을 만들어낸 인생에 대한 그의 태도가 마냥 부럽게 느껴지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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