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링컨

자카르타 2013. 12. 30. 21:05


링컨 (2013)

Lincoln 
7.7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다니엘 데이 루이스, 조셉 고든-레빗, 샐리 필드, 데이빗 스트라탄, 제임스 스페이더
정보
드라마 | 미국, 인도 | 150 분 | 2013-03-14
글쓴이 평점  



링컨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다. 링컨이 노예를 해방시킨 것은 남부의 경제 토대를 무너뜨리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얘기를 들은 정도다. 아마 이런 얘기가 나오게 된건 마냥 미화되던 링컨과 미국의 정치에 대한 반증 차원에서 였을 거다. 영화 링컨도 대략 그런 전략을 취한다. 영화 속 링컨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독재자'라는 혐의 마저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매수와 협잡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배회한다. 그러나 역설이지만 스필버그는 이를 통해 링컨의 신화를 더욱 공교하게 구축해 낸다. 어떻게? 


영화는 링컨과 어느 병사의 대화로 시작된다. 병사들은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을 외우며 링컨에 대한 무한 신뢰를 보낸다. 영화는 이런 국민의 신뢰에 힘입어 링컨이 재임에 성공한 두 달 뒤, 그리고 전쟁이 4년째로 접어드는 시점을 다룬다. 북군의 승리는 거의 임박했고 링컨의 지지는 역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 논쟁이 예상되는 '수정헌법 13조 - 노예제 폐지' 법안을 상정해 굳이 파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 링컨의 당인 공화당내 다수파는 남군과의 평화협정을 한다는 조건하에 지지를 약속하지만 노예제 폐지는 남군과의 평화협정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반면 스티븐스 의원으로 대표되는 당내 급진파는 미진한 개혁에 들러리 서는 것을 경계한다. 그들은 완전한 평등 즉, 노예제 폐지만이 아니라 흑인들의 참정권 보장까지 바라고 있다. 수정헌법에 반대하는 민주당은 이러한 급진파의 신념을 빌미로 반대여론을 형성하려고 한다. 


완전히 고립된 링컨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재선에 실패한 민주당 의원들을 매수하고 당내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거짓말도 불사한다. 그가 독재자란 혐의까지 받아가면서 수정헌법이라는 무리수를 던지는 이유는 뭘까?  전시헌법으로 부여된 막강한 권한으로 노예들의 해방을 선언했지만, 전후 법원에서 이를 거부할 수 있다는 우려. 그리고 '법에 의하면' (남부와 북부는 별개의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남부군이 가진 재산을 몰수할 근거도 없고 설혹 몰수할 수 있다면 그건 노예를 재산으로 인정하고 마는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의 링컨은 노예해방의 실현이라는 면에서는 원칙주의자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이뤄가는 과정에서는 상당히 유연한(나쁘게 말하면 권모술수의) 모습을 보인다. 그가 급진파의 수장인 스티븐스를 만났을 때 이렇게 얘기한다. 나침반이 북을 가리키지만 웅덩이가 있는 것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북을 향해 가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있어도 당장 웅덩이에 빠진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웅덩이를 피해갈 때도 있고 돌아갈 때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이 영화의 주된 갈등은 언뜻 보면 법안에 반대하는 당내외 갈등인 것처럼 보이지만 링컨은 이를 능수능란하게 헤쳐나간다. 오히려 가장 큰 갈등은 그의 이러한 내면의 모순이다. 완고한 원칙주의자인 링컨과 마키아벨리와 같은 권모술수의 달인으로서의 링컨 사이의 갈등 말이다. 어떻게 그 안에서 이것이 함께 존재할 수 있을까? 영화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링컨이 쉼 없이 떠들게 한다. 

링컨은 쉼없이 떠든다. 오죽하면 그의 참모까지 듣기싫다고 뛰쳐나갈까? 대부분 그의 얘기는 그의 경험에 바탕한다. 그가 어릴 적, 변호사시절 그의 삶을 관통한 경험들이 그의 이야기가 되고 그의 정체성이 된다. 바로 이 지점이다. 그의 레퍼런스가 현장과 현실의 경험이었기에 그의 행동에는 모순이 없다. 


이건 동양의 마키아벨리라고 흔히들 오해하는 한비자의 태도와도 비슷하다. 한비자 역시 왕의 통치술을 다루긴 했지만 그의 모든 관점은 정세의 안정 그리고 더 근원에는 백성의 안녕을 지향하고 있다. 링컨이 고수하는 가치나 그를 위한 성취도 모두 이처럼 현장에 뿌리내렸기 때문에 마치 서핑을 하듯이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실제 링컨이 어떠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이지만 스필버그는 이런 논지로 새로운 신화, 더 완벽한 신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셈이다. 


역사의 고증, 왜곡의 문제는 그들의 영웅이고 역사이니 그들에게 맡길 일이다. 그러나 이 땅에 살고 있는, 더구나 요즘처럼 정치란, 국가란, 대통령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시절에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건 비단 진보와 수구 사이의 싸움에서만이 아니다. 가령 진보내의 '기본소득'과 '보편복지'의 논쟁에서도 영화에 나오는 급진파 스티븐스와 링컨의 자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어쨌든 우리는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야하지 않을까? '기본소득'이 허황되다는 것이 아니다. '영화 속' 링컨이 행동의 기준으로 삼았듯이 국민의 삶에서 목표와 전략을 얻는 정치여야 한다는 거다. 그건 또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이야기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적어도 '영화 속' 링컨의 이야기는 자신과 세상을 구원한다. 왜? 현장의 살아있는 이야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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