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 영화 열번째는 <헐리우드 엔딩>
영화에 대한 감상은 영화 자체의 내부 요소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보느냐에 따라 영화에 대한 감상은 전혀 다르다. 누군가 내게 가장 재밌었던 영화가 뭐냐고 묻는다면 <토토의 천국>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지금 봐도 그럴까? 장담 못하겠다. 토토의 천국을 언제 봤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영화를 보면서 마냥 울었다. 아마 1997년 무렵이었을 게다. 그 영화도 꽤 좋은 영화이긴 했지만 그때 내 상황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지금 나름 길게 영화에 대한 감상을 적어놓는 건, 이 감상이 정확해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다. 지금의 나와 내 상황이 반영된 감상이기 때문에 적어놓고 - 그럴 일이 또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중의 감상과 비교했으면 해서다. 해마다 영화의 홍수가 쏟아져 나오는데 그럴 수 있을까? 모르겠다.
우디 앨런의 영화만이 아니라 다른 영화를 봐도 그런 상상을 한다. 저런 상상의 원류, 원 소스는 뭐였을까? <더 로드> 쓴 작가는 예순에 낳은 아들과 함께 여행을 하다가 어느 숙소에 묵으면서 자고 있는 아들의 얼굴을 보고 공포를 느꼈단다. 아들을 홀로 두고 떠나는 상황에 대한 공포를. 아마 <더 로드>의 가장 마지막 장면은 그렇게 작품 전체를 지탱하는 앵커 포인트가 되었을 것 같다.
우디 앨런의 <헐리우드 엔딩>은 무얼까? 70을 바라보는 노 감독도 똑같은 상상을 하지 않았을까? 눈이 멀게 된다는 상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영화를 더 이상 못 찍는 상황에 대한 상상말이다. 그 두려운 상상이 영화 제목 처럼 <헐리우드 엔딩>으로 끝날 수 있었던 것은 그럼 어떻게 된 걸까? 불안한 망상에서 평온한 일상으로 귀환하는 우디 앨런의 스타일에서, 코맥 맥카시와는 다른 그만의 '낙관'을 본다. 프랑스 비평계에 대한 풍자와 아들과의 트라우마의 치유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다지 비중 있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저 해결의 방아쇠 역할을 할 뿐이지.
우디 앨런에게 착 달라붙는 상황에, 정서 불안의 퇴물 감독의 연기가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이번에 본 작품들 열 개 중에서 가장 많이 웃은 영화였다. 우디 앨런 할아버지, 어찌나 귀엽게 연기를 하시는지. 특히 두 개의 주제를 가지고 동시에 이야기 하는 기술은 당대 최고다. 그리고 이번에 쭉 보면서 느낀 건데 우디 앨런 영화 포스터가 꽤 재밌는 것이 많던데 왜 우리 나라에는 실사 이미지만 사용하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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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하고 또 나중에 읽어보면 매번 느끼는 거지만 억지로 무슨 얘기라도 하려다 보면 꼭 영화와는 관련이 없는 얘기들로 가득 채우고 만다. 지금에야 다시 리뷰를 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이 영화를 보며서 가장 즐거웠던 부분은 아마도 영화 현장 씬들이었다.
예전에 현장에서 일할 때의 생각도 나도 더불어 영화란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회고와 성찰도 하게 된다. 비록 이 영화에서 감독이 시각장애인이 되어서 영화를 망친 것처럼 묘사하지만, 대부분의 범작들은 정말 우디앨런의 말처럼 '장님이 찍은 듯이' 찍혀지곤 한다. 영화 현장에서 감독의 존재란 장님만도 못하기 일쑤이고 촬영 앵글과 조명과 연기에 대한 발언권은 현장마다 천차만별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님이
찍은 것처럼' 보이는 영화라 할지라도) 어떤 일말의 미학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기도 하다.
우디 앨런은 '미국에서 바보가 프랑스에서는 천재'로 대접받는다는 사실을 우스개로 얘기했지만, 이 영화는 영화에서 감독의 존재에 대한 생각도 그 기저에 깔려 있는 셈이다. 주목할 것은 우디 앨런이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설정이지만 그의 행동은 귀마져도 들리지 않는 사람과 같다는 거다. 영화 속 우디 앨런은 전혀, 소리가 나는 방향도 가늠하지 못하고 대화 도중에도 잘못된 방향으로 시선을 응시하곤 한다. 아주 상식인 묘사인데도 이렇게 연출을 했던 것은 '실수'라기 보다는 감독의 존재감 자체가 사라지는 상황을 묘사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보다는 좀 더 전에 나온 스티븐 부세미가 나왔던 영화 현장의 이야기 만큼 즐겁게 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그러나 이것이 칸느에서 주목할 만한 영화였을지는 잘 모르겠다. 칸느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씁쓸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