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대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학교 폭력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부쩍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인 것 같다. 이제 90년대 김규항이 그랬던 것처럼 시대에 동참하지 못하는, 염치가 없다는 소리는 안 들어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소재를 얼마나 적절하게 가공하고 시의 적절한 메시지를, 주제를 만들어 내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아직'이라고 할 밖에.
<한공주>의 이수진 감독이 작품을 그렇게 풀어낸 이유를 설명하며, 분노는 표피적이고 순간적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이 영화 <소녀괴담>도 사건과 인물의 표피와 순간만 나열하고 있다. 소녀의 과거, 그리고 그 이전의 과거 그리고 귀신이 된 현재까지 아우르고 있음에도 왜 이 영화는 소재의 겉만 만지작거리고 있을까?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귀신은 자신의 복수를 완성한다. 그리고 그 이상의 폭주를 하려던 귀신은 옛 친구의 기억을 되살리고는 그 폭주를 멈춘다.이 영화가 갈등으로 설정해 놓은 것, 즉 원한일 텐데 그것과 맞서는 주인공의 대립구도가 뚜렷하지 않다. 친구의 억울한 죽음에 공감하면서도 그 친구의 원한을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막는다는 딜레마가 주인공에게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 역시 학교 폭력의 피해자로서 어설픈 위치만 지키고 있다.
항상 영화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넘사벽을 느끼게 하는 걸작이 있는가 하면, 나도 해볼 수 있겠다 싶은 걸작도 있고, 또 나라면 더 낫게 만들겠다 싶은 졸작도 있는가 하면, 도무지 모르겠어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게 만드는 졸작도 있다. 이 영화가 졸작은 아니지만, 고개를 흔들게 만든다. 관객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는 코드들을 곳곳에 배치를 했는데도 어쩜 이렇게 불타오르지 못할지 참 영화란 게 어려운 일이다.